무계획도 괜찮다
방학을 맞아 걱정이 되던 밥 하기 진행사항은? 늘 걱정, 때만 되면 걱정이다. 냉장고에 뭐가 있어도 없어도 뭘 먹을지 늘 고민이다. 어느 날은 잘 조합해 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마트에 가서 하나둘 장을 봐오기도 한다. 늦잠을 자고 출근해 점심을 맞은 오늘은 둘은 시켜 먹고 시간이 넉넉한 넷은 천천히 먹었다. 닥치는 대로 살고 있다. 밥때가 다가오면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무계획자 같으니. 아이들 학원 시간이 매일 다르니 좀 애를 먹고 있다. 밥 먹는 시간에 왜 학원 수업을 하는 것인지. 주 며칠이 아니라, 매일 수업이면 밥 먹는 시간 맞추기도 좋을 텐데. 밥이야 평생 먹어야 하는데 이런 걱정 하나쯤은 데리고 살아도 괜찮다. 먹을 게 없어서 걱정이지 뭘 먹을지 걱정하는 게 무슨 걱정거리에나 속하겠는가.
걱정을 키우지 말고 싹둑 잘라버리자.
나의 전략은 닥치는 대로!
딱 나에게 맞는 해법니다. 밥때가 다가오면 빠르게 걱정하고 휘리릭 끝내자. 미리 걱정하지 말자. 걱정을 사서 하는 나에게 딱 맞는 처방이다. 생각을 길게 한다고 더 맛난 요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짧게 한다고 덜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걱정은 짧고 굵게!
이번 겨울 방학에 가장 성공한 요리는 콩나물 찜이다. 냉동 해물을 가득 넣고 콩나물을 듬뿍 넣은 콩나물찜. 전분을 걸쭉하게 넣어 국물의 농도를 맞추는 것이 포인트이다. 전분 넣은 찜요리 처음 해보는 주부다. 오랜만에 새로운 ‘신선 요리‘가 나오니 모두 엄지 척을 해줬다. 어깨가 또 산만큼 올라가 찜용 튼실한 콩나물을 세 번이나 사다 요리를 해 먹었다. 맛있는 것도 매일 먹으면 새로움을 잃는다. 왜 메뉴는 매번 바꿔야 하는지 입맛에게 물어봐도 답을 안 준다.
요즘은 한솥 요리를 주로 한다.
시간상 빠르게 휘리릭, 아니면 중간불이나 잔불에 은근하게 끓일 수 있는 요리. 김치찌개는 단골 요리다.
희멀건 순두부가 주 메뉴가 되기도 한다. 이런들 어떠하랴 저런들 어떠하랴, 잘 먹는다는 게 중요하다. 아침의 유부 초밥은 만들어 놓기 바쁘게 네 아이의 입 속으로 사라진다. 아침은 좀처럼 먹기를 피하는 복이도, 달복이도 수량을 일깨워줘야 할 정도로 정신없이 먹는다. 중간에 속재료 치즈도 먹으면 안 되냐고 묻는 복실이는 덤이다. 미역국 한 솥을 끓여놓면 두 끼니는 든든하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뜨고 김장 김치 하나 척 얹으면 밥맛이 그만이다.
면 요리에 무한 관심을 보이는 복이를 위해 체다치즈 1.8킬로그램, 모차렐라치즈 1킬로그램, 파마산 치즈를 주문했다. 냉장고에 뭘 쟁여놓으면 마음만은 든든하다. 그것이 트리플 치즈면 어떠하랴.
해먹을 정신이 없을 때면 각자 라면을 순서대로 끓여 먹기도 한다. 설날 즈음에는 만둣국, 떡국을 얼마나 끓여 먹었는지 모른다. 다들 물렸다며 메뉴를 바꾸자고 했다. 왜 나는 좋기만 한데.
영 시간이 없을 때는 시켜 먹는다. 돈가스를 시키고, 마트표 비빔밥을 사 온다. 피자, 햄버거도 가끔 시켜서 먹는다. 부대찌개를 한 번은 맛있게 먹었더니 남편이 마트배달로 5개나 주문했다. 꽝꽝 언 돌덩이 같은 부대찌개가 아직 아직 하나가 남아있다. 계속 먹으니 내가 못 먹겠더라는.
그래도 밥만은 물리지 않고 한 끼를 먹어도 두 끼를 먹어도 또 먹고 싶으니 그 중독의 정도가 대단히 심각한 것 같다.
닥치는 대로 밥 하는 주부는 방학의 밥을 잘하고 있다. 이제는 3학년, 5학년인 아이들도 제 손으로 밥을 퍼서 잘 먹는다. 마트가 가깝고 가족들 모두 잘 먹어줘서 고맙다. 5학년인 달복이도 밥만은 정말 잘 퍼먹는다. 내가 꿈꾸는 맛도 영양도 만점인 요리를 바라지 말자. 밥만이라도 잘 먹는 것에 만족하자.
무계획이 때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머리를 싸매고 있어도 밥이 뚝딱 나오지 않으니, 머리는 산발로 풀어헤치더라도 정신을 챙기자. 작은 것에 만족하며 욕심을 버리자. 그래야 긴 겨울 방학을 지나 꽃피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봄이면 머리에 꽃 하나 꽂고 꽃구경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무계획 정신 순화.
그런 나에게도 나름 기준이 있다. 일식삼찬. 반찬 두 개를 하고 김치와 더하면 3 찬이 된다. 한솥요리를 하고 김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국하나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올리기도 한다. 일식삼찬이 기준이 된 이유는 식판에 세 개의 반찬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식판의 반찬 놓는 곳이 세 개가 아니라 두 개라면 딱 좋았을 텐데 아쉽다.
우리는 먹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먹기, 음식 만들기, 준비하기, 먹기, 설거지 등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먹는 것에 관심을 줄이자.
그래야만 했는데 갑자기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식빵 세 팩, 모닝빵 하나, 햄과 치즈, 양상추, 상추, 치즈, 햄, 옥수수콘, 등등을 줄줄이 사들고 오는 나는 뭣인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니 다람쥐 입을 하고 먹는 복실이에게 이런 실언도 했다.
“엄마가 다음엔 더 맛있게 만들어 줄게. ”
아니 이런, 무계획자 같으니. 주부는 음식에 관심을 끄고 싶지만 엄마는 아닌 듯하다. 복스럽게 먹는 고 입이 예쁜 걸 어쩌란 말인가. 아이고 두야. 닥치면 또 해 내는 것이 주부 아니던가. 괜찮다. 엄마의 무계획까지 포용해 줄 수 있는 주부가 최고 멋지다!
엄마는 뭣이고 주부는 뭣이란 말인가. 내 속에는 수많은 역할을 가진 인격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늘 애쓰고 있다. 중심을 잘 잡자.
방학의 중간 지점에 서서.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나의 정신은 멀쩡하다. 그런데 가끔 이런 밥도 먹고 싶다. 한솥만 한 아이스크림을 한 끼 밥으로 먹으면 좋겠다. 죠리퐁을 밥으로 먹으면 좋겠다. 초코파이를 한 끼 밥으로 어떻게 안 될까? 소시지 하나면 한 끼로 적당할 것 같지 않은가? 왜 삼시 세 끼를 먹고 이다지도 간식을 자주 챙겨 먹는다는 말인가!
아이스크림은 우리의 야식이었고, 죠리퐁은 가끔 챙겨 먹는 내 간식이며, 초코파이는 아이들이 수시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케이크, 구운 소시지는 내 술안주였군. 밥보다 맛있는 간식타임.
진정 우리는 먹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