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명 공동체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모닝루틴을 만들어가며 확실히 알았다. 새벽에 일어나도 맑고 또랑또랑한 정신이 그 증거다. 캄캄한 새벽을 홀로 맞이하는 기쁨은 가족 구성원과 나를 분리하는 시간이다. 가족과 떨어져 멀찍이서 나를 바라보고, 또 가족들을 바라볼 수 있는 냉철한 시간.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느끼고선 막내는 한동안 새벽에 깨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다시 재우며 두 개의 엄지 손가락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썼다. 아이가 잠들면 조용히 팔베개를 풀어 베개에 아이의 머리를 고이 눕혔다. 그리고 아이의 발아래 작은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었다. 새벽에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자 깜깜한 방에서 울며 엄마를 찾던 아이는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같이 새벽 독서를 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조용히 나와 등 뒤에서 나를 안아 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거실 바닥에 이불을 가지고 나와 옆에 눕히고, 상 위에 핸드폰과 자판을 올리고 글을 썼다. 어느 날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다 같이 새벽잠을 자기도 했다. 나의 아침 시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참으로 아침 시간에 매달렸다. 블로그에 매달렸다. 글에 매달렸다. 왜 그랬을까?
결혼 후 처음 찾은 ‘나’의 시간이었다.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블로그에는 1000개가 넘는 글이 쌓였다. 책을 읽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고, 살림과 투쟁하며, 아이들과 나와 가족, 지나온 삶들과 앞으로의 삶, 하루의 일과 등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수다스럽게 내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며 눈물도 흘리고 상쾌한 아침 공기에 감탄도 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단한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별것 없는 수다와 같은 글을 쓴다.
그렇게 나는 빛나는 아침을 살아왔다. 아침뿐일까 하루가 매일 새롭고 빛나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더니 파워블로거가 되었을까? 천만에, 파워는 무슨, 집에서 목소리만 커졌다. 대체로 안온해진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붙고 있다. 아이들에게 꼰대와 같은 설교를 자주 한다. 아이들은 귀마개를 하기 시작했다. 빌미를 제공한 나는 반성도 자주 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새벽 시간은 내가 하는 집안일, 살림, 육아, 가게일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자존감의 회복이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온 내 아침 시간이건만. 방학이 되면 안정된 내 시간들이 흔들리고 사라진다.
나를 뺀 다른 모든 가족들은 저녁형 인간이다. 그들은 긴 겨울 방학을 맞아 맘껏 게임을 즐긴다. 그래도 그들 나름 낮에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모자란 게임 시간을 충당하기 위해 새벽시간을 활용한다. 나는 잠잔 후, 식구들은 잠자기 전의 시간을 활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들은 야행성 단체 게임단이다. 올빼미 5형제(대장은 남편이다, 대장이 남편이다)에게 급기야 며칠 전엔 퇴근 후 게임 금지령을 발동했다. 그러면 뭘 하나, 아이들에게는 놀거리가 많다. 복동이는 수학 숙제를 하다 핸드폰을 수시로 본다. 복이는 핸드폰을 보다 12시가 땡 하면 운동을 하러 간다.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달복이는 늘 숨어서 무얼 한다. 곧잘 장롱 뒤로 사라진다. 발과 무릎만 간간이 보인다. 넷째는 유튜브에 푹 빠져있다. 이른 새벽까지 올빼미 형제들은 잘들 논다. 올빼미 5형제의 대장은 게임 금지에도 아랑곳 않고 게임을 즐긴다.
아침에는 알람이 울린다. 나는 목청이 터져라 일어나라 외친다. 퀭한 얼굴, 가파르고 높은 거친 산과 같은 머리를 하고 좀비처럼 걸어 나오는 가족들은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린다.
나 혼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되지 않느냐? 그래서 어제는 일찍 누웠다. 설핏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방 아래로 시냇물이 흘러간다. 누군가 욕실에 들어가더니 30분째 샤워를 한다. 잠이 다 깨버렸다.
한 명의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 5형제, 그들의 긴 겨울 방학 가족의 운명은? 가족은 운명 공동체다. 방학이면 모두 야간형 인간이 된다.
나의 소중한 새벽 시간, 아침 시간은 없다.
”엄마 출근해야 한다고! 다 일어나! “ 아침밥은 건너뛰고 출근은 늦어지고 점심도 늦어지고 학원 시간은 빠듯하다. 가게 일과 밥 사이, 위아래로 뛰며 설거지는 쌓인다. 밤에 일찍 자는 건 참 중요하다.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 년 12달 중 석 달은 방학인데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시간들이다. 일 년의 4분의 1을 일상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석 달은 올빼미들의 생활 패턴을 배울 필요가 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그래서 늦게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
생활이 된 책 읽기와 글쓰기는 열심히 틈틈이 하고 있다. 평소에도 틈나는 대로 했으니 그리 달라진 것도 없다. 빨래는 새벽에 못 일어나니 조금씩 쌓인다. 소파의 빨래는 매일 한 번씩 사라지고 있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