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선물을 고르라면 돈을 달란다. 나는 돈 대신 책을 달라고 한다. 내 생일에 맞춰 아이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이야기해 준다. 가지고 싶고, 읽고 싶었던 책을 하나, 둘 모아놨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2023년 3월에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선물 받은 책은 ‘사피엔스’였다. 빨간색이 얼마나 곱고 예뻤던지, 딱딱한 벽돌책은 수면제로 또 얼마나 열심히 나를 도울 것인지, 선물 책을 받고선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고 기뻐했다. 책을 놓고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나의 사진술이 영 신통치 않자 큰아이 복동이가 책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 줬다. 뭔가를 원하는 것이 없던 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물건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나인데 책 욕심이 있었다니. 그 후로 아이들은 무슨 날이 되면 엄마에게 책을 사 준다. 책이라서 좋고 내 것이라서 좋고 계속 보아서 더 좋다.
생일날이면 부러 생색을 낸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가족들은 모른다. 챙겨줘야 하는지 자체를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은근히 알아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조용히 저녁까지 보내고 밤이 되었다. 상처만 받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생일도 잊고 넘어가는 사람들이니. “내 생일이니 생일 선물을 준비해 줘! 다야반지는 필요 없어, 다야 같은 귀한 책 한 권이면 된다고! 그날 밥은 안 할 거야. 삼시세끼 나가먹자. 나는 아귀찜이 먹고 싶어! ” 이번에도 이렇게 외쳐야지.
지난 2년 동안 몇 번의 기념일마다 한 권씩 소중하게 쌓인 책들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친코>, <웃음이 닮았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코스모스>, <그리스 비극> 등이다. 한 번은 복이에게 알아서 골라달라고 하니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사줬다. 아들이 골라준 책이라 더 감명 깊게 읽고 마음을 다해 감상문을 썼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있다. 좋아하는 것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나에게는 책이 그랬다. 덕분에 관심 분야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근래에는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10여 권의 책을 주문했다. 묵직한 책 박스 하나면 일 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또 소유하고 싶은 책이 생긴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소소한 욕심을 즐긴다. 중고책값으로 4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이런 저렴한 욕심이라니 환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우는 게 미덕인 세상에 나는 꾸역꾸역 채우고 있다. 속이 허해서 우선은 먼저 채워야 비움의 이치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부가 되고 나서 나를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긴 암흑의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것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게 된다.
호불호가 없어진 단계
그것은 어머니로 체화되는 궁극의 경지일까? 절대 아니다. 나를 비우고 타인으로 그 속을 채운들 진정 가득 찼다고 할 수 있을까. 막연하게 우울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을 낳으면서 바쁜 와중에도, 일을 하면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속에 내가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속 빈 강정.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있나? 그다지... 요즘은 책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 입맛도 뚝 떨어지고 먹고 싶은 것이 하나 둘 사라졌다. 아이스크림이 싫어져 어느 순간부터 내 아이스크림은 빼고 사라는 주문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나? 아니. 시끄럽다. 가끔 아이들의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기는 하다. 나는 피아노 음악에 관심이 조금 있었다. 아주 예전에.
좋아하는 색깔이 있나? 노랑이었는데 이제는 촌스럽다. 깜장? 아이들이 입는 옷색깔이다. 때가 덜 타서 좋아하게 된 것?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나? 없다. 관심 무.
좋아하는 도시가 있나? 안동을 좋아했었다. 병산서원을 참 좋아한다. 답사 한 번 가보고 반해버렸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길이 좀 좋아졌으려나.
나는 안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안경을 썼는데 아이 둘을 낳고 안경을 벗어던졌다. 아이들이 안경에 자꾸 손을 가져다 댔다. 눈이 안경 없는 시력으로 맞춰졌다. 시력마저 내려놓았던 나. 옷 욕심도 없다. 액세서리도 안 산다. 심지어 냄새에 민감한 나는 화장품도 안 쓴다. 머리도 안 한다. 이런 사람 매력이 꽝인데. 가진 것조차 없는 나이지만, 하나 둘 내가 좋아 하는 것을 챙기면서 요즘 나는 이상하게 당당해지고 있다. 내면이 달라지며 얼굴에 미소와 광채가 흐른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아이를 낳으며 가장 서러웠던 것. 산모의 몸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닌 모두 아이를 위해 먹어야 했던 음식들. 그건 모유수유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그건 내 몸을 위한 것이 아닌 아이의 발육과 알레르기 등을 고려해 가려먹고 더 먹고 안 먹어야 했다. 2, 3년 간격으로 네 명의 아이를 낳으며 딱히 먹고 싶은 것은 없어졌다. 맛있는 즐거움, 배부른 즐거움을 아는 나였는데.
아이들이 피자, 치킨을 마구 먹어대기 시작하면서, 가수 god의 <어머님께>에 나오는 가사 ’ 어머니는 자장면을 싫다고 하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던 피자, 치킨이 처음에는 모자랐고, 그다음에는 내가 먹을 것이 모자라자 기분이 상했고, 나중에는 넉넉하게 시키게 되었고, 더 나중에는 정말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더라는 웃지 못할 어머니의 ‘자장면’ 같은 눈물의 음식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만들지 못하고, 식구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생선 요리를 좋아하는데, 구이보다 조림을 좋아하고, 생선찜을 좋아하는데. 가시 발라 먹지 못하는 아이들, 가시째 먹고 캑캑거리는 남편 덕에 생선은 손이 많이 가서 정말 해 먹기 힘든 음식이 되었다. 얼마 전 길거리에서 누군가 봉지째 들고 가는 커다란 가지미 한 마리를 보고선 저 생선을 가지고 콩나물 가득 넣고 매콤한 가자미찜을 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가자미를 잘 익힐 수 있을 것인가, 이리저리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나 나 좋자고 가시 있는 생선을 메인 요리로 올리기에는 부담이 크다. 코다리를 사다가 쪄서 콩나물을 나중에 넣고 익혀볼까. 나중에 유튜브에서 좋은 레시피를 찾아봐야겠다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가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해 먹자. 그래서 물 좋은 생선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런 나는 먹보가 확실한 것 같다. (음식 욕심이 좀 과한 나, 먹는 것으로 이 글을 가득 채울 작정인가 보다)
주말 아침에 뒹굴거리며 먹거리를 주문했다. 코다리찜이 계속 먹고 싶었는데 뼈가 마음에 콕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배가른 코다리’라는 말에 조금 비쌌지만 얼른 장바구니에 넣었다. 갱년기에 좋다는 콩도 주문하고 야채도 서너 가지 박스로 양껏 주문했다. 나 부자 된 것 같다. 먹을 것으로 가득 채웠으니 등따신 곳에서 푹 지지며 드러누워 볼까?
나에게 쉼을 주어라. 나만의 시간을 갖자. 요즘은 아침에도, 일하는 중간중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 이것이 없으면 나는 쌓여있는 컵에 스트레스를 양껏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글 쓰는 일, 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집안일을 미뤄두기는 쉽지 않다. (역시 미루기 대장) 내가 추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살림과 동등하거나 집안일을 능가하는 일이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다. 하루 종일 바쁜 날 연재 시간 마감을 앞두고 있었을 때 모든 가족이 숨죽이며 엄마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응원해 줬던 기억은 정말 최고였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았다. 가게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카운터 자리를 남편 사장이 조용히 비켜준다. 나를 위한 자판이 내 책상과, 가게 카운터에 똑같이 놓여 있다.
나는 너무 열심히 일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쉼은 충분한가? 보상받았다고 느끼는가? 나는 나중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보상받기를 포기했다. 나는 일당으로 바로바로 받기로 했다. 매일 나에게 하루라는 선물을 준다.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고귀한 하루가 어떤 글감을 내어줄지 궁금하다.
나는 가족들에게 지지받는 사람이다. 살림을 잘하고 집안일을 잘하고 아이를 잘 키우고 가게 일을 열심히 해야 그런 사랑을 받는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착한 딸로 인정받고 착한 학생으로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처럼 그랬던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서도 나는 가족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응원받으며 나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을 마다하지 말자.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생각 외로 너무 돈이 안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소소하게 글 쓰고 책 읽는 취미는 돈이 정말 안 든다. 누구든 시작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자. 내가 선물 받고 싶은 것을 선물 받자.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야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인데 이런 당연한 것을 나는 왜 이다지도 비장하게 말하는 것인가. 사람 없어 보이고 슬프게.
엄마로 주부로 존중받는 것이 아닌 나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자. 나는 귀한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매일 나를 단련시킨다.
코다리찜을 해 먹을 예정이다. 오늘 ‘배가른 코다리’가 택배로 도착한다. 기분이 좋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좋음’이 따라온다. 우히히히.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즐거움도 덩달아 따라온다.
열심히 일한 당신 누려라. 좋은 것은 충분히 누려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지? 나에 대해 늘 궁금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