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는 보트와 같다. 어지러운 거실이라는 바닥 위에 떠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바닥에는 넘실거리는 파도가 거세다. 먼지의 파도, 정리되지 않은 것들의 파도. 그래서 세탁이 된 옷도 온갖 먼지와 늘어져 있는 것들로부터 피해 소파로 피신한 것이다.
소파는 베란다 빨래방에서 가장 가까운 기항지이기도 하다. 옷의 목적지는 서랍장과 장롱이라는 거대한 육지의 세계다. 소파는 잠시 거하는 기항지 역할을 톡톡히 잘 해낸다.
생각해 보면 집안에서 소파만큼 빈 공간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생각해 보면 빈 공간이 생기면 자꾸 무엇이 쌓인다.
모든 책상은 책상 상판만큼의 넓은 빈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공간에 무엇을 채우기 위한 사명을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한다. 끄트머리부터 책장을 놓는다. 연필꽂이를 놓는다. 스탠스를 놓아 불을 밝힌다. 핸드폰 거치대와 충전기가 놓인다. 독서대가 올라온다. 심지어 하나 더 올라온다. 자판도 하나 올려둬야 한다. 공책도 하나, 책도 하나, 기본 세팅이 끝나면 그 위로 쌓아간다. 책장 위에 책을 쌓고 쌓는다. 빈 공간에는 이제 책상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도 올라온다. 어느 날은 대파가, 어느 날은 커다란 냄비가! 의자의 운명은 어떠한가. 엉덩이 놓을 공간만 겨우 놔두고 보통 가족들의 의자 등받이는 옷걸이로 사용된다. 주방 싱크대는 말해 무엇하랴.
빈 공간이 생긴다면 무엇이든 쌓인다. 공간이라는 빈틈이 보인다면 쌓인다. 소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책상의 운명은 더욱 가혹하고 복잡하다.
빈 공간은 채워지라고 있는 것인가 보다. 그것이 보트의 역할을 하든, 기항지의 역할을 하든 빈 공간이 채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인지도 모른다.
쌓이는 것들을 치우기 위해 버둥댈 필요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비움과 채움은 자연스럽다. 빨래를 갠 후 곧 또 다른 빨래가 재빠르게 소파를 다시 차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비움과 채움이라는 자연의 순환과도 같은 것이다.
현관이 잔칫집과 같다. 신발로 가득 찼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쌓인다.
바닥에 먼지가 쌓인다.
바닥에 온갖 사물이 널브러져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채움과 비움이 세상의 이치라는 걸 받아들여라. 그럼 나는 어질러지고 쌓이는 것에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