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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고독한 싸움

2024. 12. 6

by 눈항아리

늦은 밤 퇴근을 했다. 요즘은 매일 늦는다. 그래도 빨래는 계속된다. 나의 사정을 일일이 봐주지 않는 야멸찬 녀석.

몸이 영 시원찮은 복동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꼬마들은 잠잘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빨래를 혼자 개려니 외롭다. 큰 아이들의 긴 바지가 더 길게 느껴진다.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빨래 개기는 고독한 싸움이다. 살림은 외롭다.

매일 시끌벅적한 가족들이 있는데도 집안일은 외로운 싸움이다. 누구 하나 집안일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집안일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 주부만이 주체가 된다.

나의 일


살림이란 주부의 일로 통상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 통념을 나와 우리 가족 모두는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래서 누구도 엄마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스스로 집안일을 하지 않는 이유다. 주부가 시키면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일어나 시킨 일만 딱하고 만다. 제 일이 아닌 일을 시키니 투덜거리는 것이다.

살림은 과연 주부만의 일일까?


가족 구성원 중 왜 하필 주부라는 역할을 맡아서 이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 또한 스스로 맡은 일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떠맡은 일인데 자연스럽게 ‘살림은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몸과 마음을 바쳐 집안일에 충성을 다하는 이유는 무얼까.

집안일은 모두의 일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일이라는 신념을 어떻게 머릿속에 심어줄 수 있을까? 살림은 모두의 일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을까? 역시 세뇌교육만이 답인가? 세뇌한다고 하면 참 무서운 것 같다. 그러나 꾸준히 주입하자. 모두의 일이다. 모두의 일이다. 간악한 음모를 꾸미는 지하 단체의 구성원 같다.

좋은 생각 심어주기, 가족을 올바른 생각으로 인도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큼의 살림이 쌓인다. 자신의 몫을 모두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정 부분 가정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 우리 가족 여러분 들리시나요? 알람 소리도 안 들리는데 엄마의 이 목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요.

오늘도 역시나 알람이 울리지만 일어나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복동이와 복이도 알람을 못 듣는다. 언제 이들의 귀가 트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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