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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주부라는 이름표

by 눈항아리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날도 있다. 매일 하고 싶은 일이라면 천직이다. 꿈을 찾은 것이니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니 살림은 나의 천직은 아니었던 것이다. 좋은 일도 하기 싫은 날이 있는 법인데 의무로 하는 일은 더 그러할 테다.

하기 싫은 일을 꼭 해야만 할까? 그렇다. 하기 싫은 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모든 살림, 집안일 중 꼭 하나만은 하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콕 집어서 해야 주부라는 생색을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뭘 안 해도 주부라는 이름표를 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떨어져라 이름표! 마구 떨어지라고 흔들어대도 안 떨어진다.

하루 한 번 빨래 개기는 집이 굴러가게 하는 최소한의 방편이다. 주부라는 이름표를 달고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이다. 주부라는 이름의 무게가 때로는 무겁기도 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니 시간이 느리게 간다. 늘어져서 빨래를 개니 남편이 와서 지휘를 해 준다. 아이들도 늦어서 잠잘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하나씩 불러 자신의 빨래를 들고 서랍장에 넣어주었다.

정해진 빨래의 양이 있으니 천년만년 걸리지 않는다. 20분이 채 안 되어 한 무더기의 빨래를 정리했다.

힘이 드는 날은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뗄 수 없는 꼬리표가 있는 법이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1분이었다. 교육 공무직 파업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 점심을 챙기고 아이들이 내 일터를 점거하는 동안 나는 일이 밀렸다. 바뀐 일정 덕분에 밤늦게까지 밀린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타인의 파업 여파는 그렇게 돌아왔다.

나는 자영업자, 일하는 주부다. 그나마 나는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1>
태산을 옮기다 64
살림의 기적, 태산을 옮기다는
소파 위에 쌓이는 빨래를 하루에 한 번 개고 인증합니다.



나는 매일 퇴근 후, 하루에 한 번 빨래를 갠다. 이 날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2시가 넘은 시간 집에 도착해 빨래를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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