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파의 운명

by 눈항아리

따뜻한 어깨를 내어주는 너.

포근하게 안아주는 너.

가만히 지켜봐 주는 너.

밤의 어둠 속에서도 차디찬 피부 안에는 따뜻함을 품고 있는 너.

그것이 비록 솜뭉치이거나 스티로폼 조각이거나 천 조각일지라도.

그렇다고 뜯어볼 수는 없으니,

소파의 속을 알 수는 없다.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진심인지 아닌지?

굳이,

소파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는 없다.

그저 소파는 아무 조건 없이 내 말을 들어준다.

가만히 보아준다.

소파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란 그런 것이다.

놓여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

고장 나 버려지기 전까지 소파는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할 테다.

스스로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정해진 곳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가만히 한 곳에 있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수행과 같은 일이다.

소파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때로는 소파의 것이 아닌 타인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기도 한다.

사람의 무게도 버거운데

때로는 사람이 아닌 빨래의 무게를 감당한다.

매일 그 무게를 버티며 살아간다.

푹신하면서도 단단한 소파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덤덤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나보다 태산과 같은 빨래가 더 가벼워서 그런가?

소파에게 내가 앉든 빨래가 앉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닐지도.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소파의 사명은 아닐까.

소파는 묵묵히 아침의 서늘함을 품고

찬란한 아침의 태양볕을 쬐며 편안하게 앉아있다.

집에서 가장 몫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한가로운 시골 풍경을 원 없이 보고 있다.

곧 가족들이 깨어나면 수난의 시간이 시작된다.

주말은 소파에게 더욱 무거운 무게를 짊어지어야 하는 날이다.

소파야 힘내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하는 주부라는 이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