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빨래 자동 정리 시스템

by 눈항아리 Feb 21. 2025

소파 위의 빨래는 오늘도 자동 정리되었다. 자동 정리 시스템을 집에 들여놓은 것 같다. ‘손 안 대고 코 풀기 정리 시스템’이라 이름 붙여 본다. 게임을 해야 하는 청소년 어린이들이 빨래를 갰다. 순식간에 빨래가 없어졌다. 아이 둘이 빨래의 자리였던 소파 위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런 놀라운 자동 정리 시스템이라니! 살 수만 있다면 집에 영원히 하나 들여놓고 싶다. 그럼 게임을 계속 시켜야 하는 걸까?

빨래를 개지 않고 소파에 쌓아 놓던 시절에 아이들이 소파를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빨래를 한쪽으로 밀어서 압착시킨 다음 한자리 만들어 차지하고 앉았다. 빨래를 깔고 앉으면 혼자 빨래를 다 개라는 무시무시한 엄마의 저주가 내려졌다. 엉덩이 다림질이 된 빨래들은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세 무더기 차곡차곡 쌓였었다. 누구 하나 게임을 한다고 정리하는 법이 없었다. 소파 위의 쿠션 같은 친근한 존재였다.

이제 빨래는 소파 위에서 정리해야 할 존재가 되었다. 엉덩이로 뭉개지도 않고 강제 다림질을 당하지도 않는다. ​‘빨래는 개야 한다’는 이제 우리 가족에게 친숙하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빨래를 왜 개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도 그렇겠지? 엄마가 개라고 하니 개는 것이겠지. 나도 세상이 나에게 빨래를 개라고 하니 그저 개기는 하지만 정말 개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다. 빨래도 소파 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빨래를 갠 순간만 소파가 비어있고 매번 쌓이니 더욱 그렇다.

해야 하는 일이 분명한데, 하면 깨끗하고 편리한 것은 분명한데 아직 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 엄마가 하라니 마지못해 하는 아이처럼, 세상이, 상황이 하라고 하니 마지못해 하고 산다.

세탁 전자동 빨래 정리 시스템이 어서 나오면 좋겠다. 미래의 기약 없는 시스템을 기대해 본다. 주부의 염원이 혁명을 만들지 또 누가 알겠는가. 지금은 이유를 모른 채 빨래를 순식간에 없애주는 ‘손 안 대고 코 풀기 정리 시스템‘에 기대는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손 안 대고 코 풀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