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양말 전쟁을 목격한 남편은 출근 전 세탁기를 돌리려고 했다, 세탁기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남편은 그게 아내를 돕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겠지.
“세탁기를 지금 돌리면 안 되오 여보! ”
‘왜? 도와주겠다는데? ’
남편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뚱한 표정을 하고 손을 멈추었다. 갸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친절한 남편의 도움을 거절해야만 했다. 왜 나는 그의 자발적 세탁을 극구 말렸을까.
아침에 빨래를 돌리면 깜깜한 밤까지 젖은 세탁물이 세탁기 안에 있어야 한다, 정 남향의 세탁실은 햇빛을 받아 따끈따끈하다. 바람 함 점 없이 통풍이 안 되는 세탁조가 따끈따끈 해진다. 세탁기 속에 젖은 빨래를 방치하는 것은 곰팡이를 키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빨래 후 세탁기 문을 열고 물기를 제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빨래는 퇴근 후 바로 돌리거나 새벽에 돌리는 거다.
‘당신의 도움을 야멸차게 거절해서 미안해요. 아침에 바빠서 설명도 자세히 못해줬네요.’
세탁과 건조가 한꺼번에 된다면 세탁이 끝나고 건조기로 옮기는 불편을 줄일 수 있을 텐데.
내가 어릴 땐 세탁기와 탈수기가 따로따로였다. 세탁조와 탈수조 하나씩 2개가 붙어 있었다. 세탁기 윗면의 모습은 정사각이 아니었다.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이었다. 세탁이 끝나면 물기 가득한 빨래를 탈수기로 옮겨야 했다. 지금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빨래를 옮기는 것처럼...이제 와 생각하면 세탁기에서 탈수까지 한꺼번에 되는 통돌이 세탁기는 정말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빨리를 옮기는 수고로움은 언제 해소될까 하였더니 세탁, 건조 일체형이 있었다! 나만 모르는 이런 획기적인 기술 발전이라니!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살 수는 없다. 마르고 닳도록 지금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고, 다음번엔 꼭 언젠가는 바꾸고 싶습니다, 여보!
일체형 세탁기를 발견했다. 시간 절약은 물론 아침 출근 전 빨래도 괜찮을 듯하다. 밤에 넣어 두고 아침에 꺼내 입으면 되겠군. 문도 자동 개방이 된다고 한다. 볼수록 사고 싶군. 세탁기가 부서지도록 빨래를 더 열심히 돌려야겠다. 내 세탁기가 빨리 부서지라고 기도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런 즐거운 소식을 난 왜 모르고 있었을까? 텔레비전을 안 보니 광고를 접할 기회가 없다. 가전제품 파시는 님들! 저와 같은 사람은 어디서 이런 광고를 봐야 합니까! 좋은 소식은 뉴스로 빠르게 좀 전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새삼 광고 시청의 필요를 느꼈다.
하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이미 실렸겠지? 신문을 안 보니 몰랐다. 티브이 광고, 유튜브 광고도 접할 기회가 없다. 실물경제를 보러 대형마트, 가전마트 나들이도 자주 다녀야 하는데 갈 틈이 없다. 세상은 열심히 돌아가는데 나만 깜깜이네. 눈 닫고 귀 닫고 사는 것 같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우리 집 세탁기와 건조기가 수명을 다하는 날, 더욱 업그레이드된 세탁기를 만날 수 있겠지? 기대된다. 열심히 빨래를 할 이유가 생겼다. 그 이유가 세탁기 부수기는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