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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삶

by 눈항아리


‘나는 왜 태산을 옮기는가? ’ 생각해 본다.


없애도 옮겨도 정리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고 매일 재생산되는 빨래산을 도대체 나는 왜 옮기는 건가.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왜 굳이 포장해 가며 광고하듯 얘기하는 걸까. ‘태산을 옮기다’의 끝이 결코 ‘태산을 다 옮겼습니다’가 아니라는 걸 분명 모두가 알고 있다. 빨래가 줄어들 뾰족한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건가.

무슨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집안일 중 작은 하나라도 해보자 하고 시작한 100일 프로젝트. 바뀌는 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다. 작은 계획을 세웠으니 작은 결과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족 모두 빨래에 대해 적극적이 되고 있다. 빨래는 개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내가 아프면 모두 같이 힘을 모아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확실히 알아가고 있다.

대단한 성과 중 하나는 복실이가 이제 제법 징징거리지 않고 자신의 빨래를 갠다는 사실이다. 빨래만 보면 도망가던 달복이가 자신의 옷을 개어 들고 가 정리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꼬마들의 인식을 짧은 시간에 바꿀 수 있었던 것 고사리 같은 꼬마 손이 빨라진 것, 수건도 개 준다는 것, 양말 짝을 잘 찾는 빠른 눈을 가졌다는 것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다.

그래도 결국은 매일 재생산되는 ‘태산’ 앞에서 맥을 못 춘다. 소파 위의 빨래는 ‘다시’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시때때로 태어난다. 빨래는 불사조의 후손이 아닐까? 아무튼 대단한 존재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빨래는 집안일 중 아주 사소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불사조처럼 매일 다시 태어나는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일을 매일 처리하는 주부가 대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 태양이 떠오르듯 다시 깨어나 몸을 일으키고 하루를 살아간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모든 지루하고도 엄청난 일상을 인간은 살아간다. 그런 대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바로 나다, 그리고 우리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불사조와 같은 존재가 만 개는 포함되어 있을 법한 대단한 일상을 ‘나’라는 존재가 살아간다. 우리는 정말 대단하다.

그게 뭐든 ​일상 속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삶이 풍부해진다. 나를 대단한 존재로 만들어준 빨래에게 감사를!

빨래가 없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없어지지 않는 것을 없애려고 생각한 게 잘못이다. 빨래는 물 흐르듯 흐른다. 나의 몸에서 세탁기, 건조기를 거쳐 잠시 소파에 머물렀다, 서랍장과 옷장을 거쳐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오는 물의 순환과 같다. 그 순환의 주기 중 어디든 머물러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소파에 머물러 있을 때 좀 지저분해지고 구겨지고 짓이겨지는 게 볼썽사나웠을 뿐이다.

청소, 설거지, 음식 하기, 쓰레기 정리...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모든 집안일이 빨래의 순환과 같다. 살림살이, 집안일만 그럴까? 일도 그렇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빨래와 같다.


빨래 같은 일상.

빨래라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조각에 이야기를 붙이고 재미를 더하는 일 그게 바로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아닐까. 삶의 의미란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만들어진다. 빨래라는 사소한 일상을 나의 특별한 일상으로 만들어 보았다. 지루한 빨래와의 싸움이 벌써 80일의 일기로 차곡차곡 쌓였가. 스스로 특별하게 여긴다면 작고 사소한 일이 특별하게 된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긴다면 나도 특별하고 반짝이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삶이란 매일을 살면서 내가 만들어 가는 일상 이야기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발자국을 만들듯이 내가 만들면 나의 삶이 만들어진다. 내가 만드는 삶.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늘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기대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빨래를 개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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