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어 숏 패딩만 입던 복동이. 많이도 춥던 어느 날 장롱에서 잠자던 롱패딩을 꺼내와 입었다. 따뜻하다고 했다. 이제 롱패딩을 입고 다닌다고 했다. 깨끗하게 다시 빨아 그다음 날부터 아이는 롱패딩을 입고 다닌다. 아빠가 젊었을 때, 20대 30대에 입던 패딩이다. (물론 남편은 아직 젊다. 20대, 30대는 지금 보다 젊다는 이야기다. 결코 늙었다는 건 아니다.)
아빠의 겨울 잠바를 입고 다니니 아빠만큼 커보인다. 하긴 이제는 우리집에서 제일 크다. 롱패딩 입은지 일 주일째, 옷을 입고 벗을 때마다 안에 입은 옷에 털이 꽂힌다고 했다. 흰옷은 그나마 나았다. 체육복을 패딩 안에 입고 난 후 털 감당이 안 된 아이는 옷을 세탁 바구니에 넣었다고 했다. 내일 입어야 하니 꼭 빨아달라는 말과 함께였다.
옷 상태를 보니 빨아서 털이 없어질까 싶었다. 하얗고 작은 깃털이 체육복 전체에 도포 되어 있었다. 당장 패딩을 말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커다란 롱패딩을 20리터 쓰레기봉투에 꽉꽉 구겨 넣으니 봉지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다.
아이가 아빠의 옷을 입을 때부터 새 옷을 하나 사줄까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기웃 거렸는데 미리 하나 살 걸 그제야 후회가 되었다. 복동이 것을 사자니 팔 짧은 달복이 패딩도 신경이 쓰이고, 털 적은 복실이 패딩도 신경이 쓰였다. 롱패딩은 자전거 탈 때 불편하다는 복이의 말이 고맙기만 했다. 롱 패딩 하나도 부담이 되는데 세 개를 사자니 선뜻 고르지는 못하고 쇼핑몰에 들어갔나 나왔다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사게 될 걸 미리 살 걸 그랬나. 엄마가 미리미리 짜잔 하고 사 주면 좀 좋아.
다행히 복동이는 옷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단지 깃털이 빠진다고 불편하다고 했을 뿐이다. 이제 패딩의 운명이 다하였으니 옷을 사야 할까? 그럼 마지막 수를 써보자.
“네가 입던 털 빠지던 검정 패딩은 아빠가 즐겨 입던 거야. 집에 어딘가 장롱 구석에 아빠가 한두 번만 입고 짱박아둔 롱패딩이 있어. 그거 한 번 입어보자. 괜찮으면 입고 아니면 하나 사자. ”
아들은 아빠의 역시나 오래된 옷을 꺼내 입었다.
“너무 멋지다. ”
아이는 멋지다는 엄마의 말에 멋쩍어했다. 그럼 패딩이 다 똑같은 패딩이지. 아빠가 입은 것보다 더 멋지다. 이 패딩으로 낙점이다.
이 패딩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래도 10년 안쪽에 산 옷이다. 정말 한두 번밖에 안 입은 거의 새것이다. 안 입으니 걸어두지 않고 접어두었던 것을 찾느라 고생했다. 절대 모양이 이상한 게 아니고 복동아. 아빠가 즐겨 입지 않았던 것뿐이야. 아빠도 숏 패딩을 좋아하나 보다. 아니면 안 꺼내놔서 안 입었던 것일까. 어디 입고 나갈 새가 없어 못 입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빠의 역시나 오래된 패딩을 세탁기에 넣었다. 밤사이 돌아간 패딩 걱정에 새벽에 한 번 더 일어나 건조기에 살짝 돌려 철봉에 뉘여놨다. 이런 뿌듯함이라니.
복동이가 오늘 잘 입고 갈까? 아이는 옷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않는 척을 하는 것일까? 그냥 하나 사줄 걸 그랬나? 새걸로 하나 사달라면 속 시원하게 그냥 새 옷을 사겠는데. 한두 푼 하는 옷이 아니니 자꾸 망설이게 된다. 엄마가 참 쪼잔하다.
돈 한 푼 아껴보겠다고 밤잠을 못 자면서 패딩을 빨았다. 오래된 패딩이라 털이 푹 꺼지지는 않겠지?
그러면서도 자꾸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다. 입어보고 매장 가서 사야 하나? 주말에 데리고 나가야 하나? 아이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하다. 입어보고 정 싫으면 투덜거리겠지 뭐.
아이에게 오래된 아빠의 패딩을 연달아 안겨주고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뿌듯했다. 돈도 아끼고 지구도 지켰다고 마음으로 작은 위로를 해 본다. 아빠의 옷을 입어주는 아들이 제일 대단해 보인다. 최고!
최고는 무슨.
아이는 아빠의 오래된 옷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나 보다. 지난 번 입었던 옷보다 춥다고 했다. 춥다는데 어쩔 것인가 돈이 굳었다고 좋아하더니 쯧. 좋다 말았다. 조만간 빵빵한 털이 든 옷으로 사러 가기로 했다.
짠순이 엄마의 욕심이 과하긴 했다. 나도 십 년, 이십 년 된 엄마 옷은 안 입을 것 같다. 쓸 때는 아끼지 말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