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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쟁이 복실이는 야무지다

by 눈항아리 Mar 08. 2025

꼼수 여왕의 딸 역시 장차 꼼수 여왕이 될 듯하다.

복실이가 말했다.

“엄마 소파 위에 있는 빨래 다 내리고 사진만 찍어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꼼수쟁이, 엄마를 쏙 빼다 닮았다.

오빠들 모두 없는 상황, 복실이랑 둘이서 빨래를 갠다. 복실이는 수건을 갖다 놓으러 가선 책상에서 잘 마르고 있던 피카츄 글라스데코를 들고 온다. 수건은 잊었다. 빨간 볼이 흘러내려 얼굴이 엉망이 된 피카츄를 살리는 게 급선무다. 빨강 위에 노랑을 덧칠한다. 이미 빨래에서 마음이 떠난 복실이는 놓아주었다. 오랜만에 나 혼자 빨래를 갠다.

빨래를 다 정리하고 책상 위에서 복실이가 가지고 떠난 수건을 발견했다. 정리하러 가다 말고 멈춰 그 자리에서 바위산이 되었다는 수건탑. 수건탑이 아니라 흔들흔들 흔들바위가 아닐까.


​​



복실이 빨래가 반이다. 그런 날도 있다. 수건까지 개야 하니 양이 엄청 많다. 가장 먼저 시작했으나 가장 마지막까지 다소곳하게 앉아 빨래를 갠다.


오빠들처럼 엉망으로 들고 가 쑤셔 박는 게 아니다. 배운 대로 탈탈 털어 반듯하게 펴서 예쁘게 접는다. 수건은 색깔별로 쌓아 놓았다. 그러데이션을 만들려고 진한 색깔 수건부터 아래에 놓고 연한 색을 위로 쌓는다. 역시 넘어질 것은 생각지 않고 흔들리는데도 열심히 쌓는다. 속옷도 야물딱지게 접어서 뭉친다.

투덜거리면서 개는 게 얼마나 이쁜지 옆에 앉아서 뽀뽀를 마구 해주었다. 힘들다고 하길래 어깨를 마구 주물러 주었더니 너무 아프다고 했다. 복실이 손이 내 어깨를 주물러주는 것처럼 살살 주물러 주었다.

옷을 다 개고 유튜브를 본다고 했다. 복실이가 마지막까지 빨래를 다 개는 동안 나는 복실이 방 청소를 해줬다.

10살이 된 복실이도 이제 20분 빨래 개기에 집중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아이도 할 수 있는 빨래 개기.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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