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다니 게임을 하던 세 명의 아이들이 얼른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난다. 나는 말도 않고 소파 앞에 서서 핸드폰으로 사진 각을 잡았을 뿐인데. 이제는 재깍 알아채고 아이들이 다들 사진에 찍힐 새라 얼른 도망가는 것이다. 얼굴이 나오면 엄마의 소파 깜짝 등장인물로 출연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데... 아이들은 제 얼굴이 나오는 게 끔찍이도 싫은가 보다. 저희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소파가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남편은 소파에 빨래를 꺼내 놓는 줄 알고 아이들이 알아서 피해 주는 줄 안다. 하긴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기 바로 전이기도 했다. 빨래를 꺼내기 전에 얼른 빈 소파를 찍어야 하니 아이들이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셔터를 누른 것이다.
알아서 소파 사진을 찍는 줄 알고 피해줄 정도면 빨래를 개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느냐 하면 그건 좀 쉽지 않은 문제다. 알아서 스스로 빨래를 정리하면 딱 좋을 텐데 그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빨래를 정리하라는 명령이 하달되면 군소리 없이 자신의 빨래를 개고, 내가 출동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자신들의 지휘 체계를 이용해 할당량을 정하고 소파 위의 모든 빨래를 치워준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세 명의 아이들이 앉기 전에 소파에는 거무튀튀한 한 무더기의 빨래가 있었다. 검정 옷은 대부분 아들들의 옷이다. 딸아이 복실이는 겨울에도 아래위로 밝은 색 옷투성이다. 하얀 옷을 세탁하면 혼자 독박을 쓴 것처럼 빨래의 반을 개야 한다. 어제 양이 많아서 복실이 혼자 얼마나 힘들었던가.
어제의 수고로움이
오늘의 여유를 가져온다.
오빠들이 옷을 개는 동안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며 복실이 혼자 한량처럼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