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가족은 각자의 일을 한다. 좁은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방으로 들어간다. 빨래를 개기 위해서는 잠깐의 환기가 필요하다. 소파를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 깨우쳐 주는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핸드폰 충전을 하는 아이, 컵라면을 먹겠다고 물을 끓이는 아이, 화장실에 들어앉은 아이,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을 읽는 아이가 있다. 운동 준비를 하는 한 명 더 추가.
“빨래 먼저 개자! ”
부르면 오는 사람은 오고 안 오는 사람은 안 온다. 둘은 모이고 둘은 안 모이고...
매일 온화한 정신을 유지하며 빨래를 개려면 억울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안 오는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다. 안 모이는 구성원은 늘 집에 와서 늘 일정하게 다른 일과를 수행한다. 어찌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녀석을 불러낼 수 없지 않은가. 운동하겠다고 집 안에 발을 안 들이는 남편을 거실로 소환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상황에 따라 모이지 않은 사람의 빨래는 빠르게 재분배를 한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옷은 나누어 개지만 제 형제들의 옷은 개려고 하지 않는다. 큰 아이들에게 보통 아빠의 옷을 부탁하고 꼬마들에게는 수건을 부탁한다. 그럼 난 모이지 않은 어린이의 옷만 개면 된다. 양말도 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누구든 잘 정리해서 가져다 놓는다.
거실 빨래터에 모여 앉아
오지 않는 사람에게 원망을 하는 대신
빠르게 자신의 옷을 개고
오지 않은 사람의 빨래를 재분배하고
공동의 빨래를 함께 갠다.
오늘 모이지 않은 사람에게 벌칙을? 그런 건 없다. 자발적 참여를 권한다. 오늘 개지 못한 빨래 자리는 내일 또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으로 한다.
오늘 개지 않는 빨래는 다른 집안일로 대신한다. 특히 남편의 빨래 개기 참여는 저조한데 가끔 볶음밥을 얻어먹거나 야식을 챙겨 주는 것으로 보상받는다. 일요일 아침을 챙겨주는 건 정말 고맙다.
가족이란 꼭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는 아니지만 집안일로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원망 대신 ‘어딘가’에서 받을 곳을 마음으로 정하면 된다.
요즘은 ‘쓰레기를 버려줘’를 추진하고 있다. 남편에게 버려주기를 계속 바라는 것이다. 말을 한다고 들어줄 남편이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들어주는 남편 님. 남편은 바쁜 출근길에 잊기 마련이다. 그럼 얼른 정리해 현관에 놓아주거나, 현관에 놓아도 안 가져간다면 출발 전에 얼른 차에 실어 준다. 시골집은 쓰레기 버리는 곳이 멀다. 차량 내부에 싣고 가기는 싫다. 아이들 등교시간이 늘 빠듯한데 중간에 한 번 서기도 힘들다. 그러니 남편이 버려주는 쓰레기가 참 고맙다. 쓰레기가 고마운 것이 아니고 남편이!
하나 양보하고 하나 얻기 전략!
주부는 전략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