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했다
술병이 났다.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굴렀다. 약국에 갔다. 겔포스 주세요. 한 포를 뜯어 쭉 짜 먹었다.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또 배가 아팠다. 한 포를 뜯어 쭉 짜 먹었다. 효과가 썩 좋지 않았다.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굴렀다. 지난밤 맥주 한 캔을 마셨다. 고작 한 캔 맥주로 술병이 났다. 억울할 뿐이었다.
고등학생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토를 했단다. 여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데굴데굴 구르는 나의 배를 차에 태우니 멀쩡했다. 45도 각도로 쏟아지는 거센 눈발을 맞으며 차를 몰았다. 학교에 가서 해쓱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들은 술을 안 먹었는데...
엄마와 아들이 배탈이 같이 나다니...
다행이다. 맥주 한 캔으로 술 병이 난 게 아니었다. 정말 억울할 뻔했다.
우리는 나란히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았다. 약국에 가서 약을 타왔다.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른 지 삼일째. 죽을 먹으며 고등학생 하교를 지원하고 있다. 당분간 외부음식을 먹지말자 다짐했는데, 죽을 파는 가게에는 특별하게도 “위생 안심”이라는 강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안심하며 오늘도 죽을 찾으러 다녀왔다. 죽을 끓여 먹으면 되지 않느냐? 내가 안 아파야 죽을 끓이지 않겠는가. 나도 가스레인지 앞에서 지켜보며 죽을 잘 끓인다. 계속 저어가며 끓어 넘치나 감시해 가며 정말 잘 끓인다. 그런데 죽은 파는 죽이 정말 맛있다. 20분 만에 완성되어 나오는 죽은 정말 획기적이다. 죽이 20분 만에 만들어지다니! 나도 죽 빨리 만드는 방법을 좀 연구해 봐야겠다. 냉동실 칸을 좀 넓혀야 할까.
아무튼 나는 맥주 한 캔 정도는 거뜬하게 마실 수 있다. 나는 맥주 한 캔으로 술병 나는 사람은 아니다. 안 억울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