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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운동과 감자 중에

by 눈항아리 Mar 25. 2025

중2 복이는 조수석에 앉아 코를 골면서 잔다. 여드름 가득한 아이의 얼굴은 맑기만 하다. 입은 헤벌리고 곤하게 곯아떨어졌다. 머리가 시트에 붙어있는 게 참으로 용하다.


“어젠 자전거 몇 분 탔어? ”

“40분.”


늦은 밤에 집에 와도 자전거는 꼭 탄다. 씻고 자면 12시가 넘는다. 엄마, 아빠가 먼저 자니 실컷 놀다 잤을 테다. 아침은 비몽사몽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학교를 가니 대견하다. 집에 가는 길에는 늘 노래를 하며 후렴구를 붙인다.


“내일도 학교 가야 돼~~ 내일도 학교 가야 돼~~”


지겨운 학교를 매일 가야 하는 것에 대한 한탄의 노래다.


복이는 잠을 포기하고 운동을 선택한 녀석이다. 운동을 하며 드라마 보기를 즐긴다. 아침의 정신머리는 편의점으로 가서 챙긴다. 카페인 음료는 생명수다. 밤운동이 아니라 밤잠을 자야 한다, 아이야. 카페인은 잠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여보, 아침에 일어나면 나 좀 깨워줘.”

“몇 시?”

“5 시.”

“뭐 하려고? “

“아침에 감자밭에 퇴비 뿌리고 관리기로 한 번 갈아놓고 출근하게. “

“나는 감자 안 먹어. 사 먹을 거야. 그 시간에 잠을 더 자. ”


어디 일어나나 봅시다.


내 눈은 새벽 5시 40분쯤에 떠졌다. 밖이 깜깜했다. 밭에 나간다 해도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겠다. 역시 남편을 깨우지 않았다. 안 그래도 피곤에 찌든 몸 한 잠 더 자라는 아내의 배려였다. 건조기를 돌려놓고 베란다 문을 살포시 닫았다.


남편은 6시가 좀 넘어 일어났다. 밭고랑 하나 정돈하는 일이지만 1시간 가지고는 택도 없다. 7시쯤이면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 아침의 밭일은 이제 물 건너갔다. 그는 소파 끄트머리, 자신의 지정좌석에 앉아 잠을 깨웠다. 그걸로 아침이 안 깨워지는지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았다.


남편은 잠을 줄여 감자를 심고 싶다고 했다. 잠이 중요하지 그깟 감자 하나가 중할까. 커피도 말고 30분 더 누워 있다 일어날 것이지. 이제 감자도 심고, 이것저것 심으려면 종일 내 님의 마음은 밭에 나가 돌아오지 않을 텐데 걱정이다.


“여보, 감자 꼭 심어야 할까? ”


“지난해 다 못 먹은 감자에 싹이 났더라고. 그거 심으면 잘 자랄 것 같아. ”


못 말리는 농부 아저씨다. 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나는 올해 감자 심는다는 말은 못 들은 것 같은데 작물의 종류는 야금야금,  한 줄, 두 줄 늘어간다.




잠과 운동과 감자 중에 복이는 운동을 택했다. 감자는 아이의 선택 사항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잠과 운동과 감자 중에 남편은 감자를 택하고 싶어 한다. 감자를 심고 나면 운동을 택할 것이 뻔하다. 살이 2킬로그램이 다시 쪘다면서 집에 가면 무조건 자전거를 타고 잔다고 했다. 그럼 무조건 12시 넘어가고 1시가 된다.


잠과 운동과 감자 중에 나는 당연 잠을 택한다. 감자는 안 먹어도 된다. 운동은 잠자고 남는 시간에 해야 한다고 믿는다. 잠 잘 자고 일어난 내 얼굴은 피부부터 다르다. 잠은 재생능력이 탁월하다. 왜 잠을 최하위에 두는 것이지?  이해를 못 하겠다.


엄마나 아내가 주저리주저리 얘기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것이 뻔하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아들의 밤운동을 방해하고, 남편의 아침잠을 지켜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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