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복이
가랑비가 내렸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와이퍼로 닦아냈다. 출발할 땐 안 내리던 비였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10mm 미만, 아주 조금만 온다고 했다.
미세먼지 가득 품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 다니지 말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주 상대는 조수석에 앉은 인물이다. 오늘의 당첨자는 중2 복이. 아들에게는 딱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참, 두 마디. 우산을 언급해 줘야 한다. 복이는 자주 주어를 빼먹는 엄마를 답답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한다.
“가져가.” 이러면 무슨 말이냐는 듯 뚱하게 쳐다만 본다. 결코 되묻는 법은 없고, 우리의 대화는 단절되고 만다. 나는 주어가 없는 말을 자주 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한 복이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가족들 누구든 다 알아듣는 말을 왜 복이는 못 알아듣는 것일까.(아들인데 알아서 척척 좀, 대충 알아 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 그래서 나는 나름 복이에게 말을 건넬 때면 더욱 친절하고 세심하게 언어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말했다.
“우산 가져가. ”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늘 말이 많아서 문제다. ‘먼지비’ 어쩌고 하면서 주절주절 계속 비에 대해 읊어댔다. 잔소리와 같은 나의 언어, 그래 잔소리가 맞다. 긴 잔소리 끝에 복이가 물었다.
“뭔 우산? “
그냥 대충 가져가면 될 것을, 차에 보이는 우산이 몇 개 되는 것도 아닌데 뚱한 표정,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선 묻는다.
친절한 나는 배려를 담아 말한다. 이 소년과 이야기하려면 언어에 꿀을 발라야 한다.
“엄마 가방에 작은 3단 우산 있어. 그거 가지고 갈래? 아니면 뒷좌석에 있는 장우산 가지고 갈래? ”
“큰 거. ”
천장 낮은 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복이는 긴 팔을 뻗어 자신의 팔보다 더 긴 우산을 뒷좌석에서 앞자리로 옮겼다.
‘설마 운전하는 엄마를 우산으로 치지는 않겠지?’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담담한 척 운전에 집중했다.
학교 근처에 도착해 차에서 막 내리려고 하는데 복이가 말했다.
“우산 안 가지고 갈래. “
너의 마음을 모르겠다. 긴 우산을 조수석까지 옮긴기는 수고를 하면서, 긴 다리와 책가방 사이로 우산을 끼워 넣더니, 너는 왜 변덕을 부리를 것일까. 먼지 비 이야기도 했는데 왜 우산은 안 가지고 가는 것일까. 내가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복이는 우산 없이 내렸다. 모자도 없는 외투를 입어 곱상한 머리칼 위로 가랑비가 방울방울 내려앉았다. 잠이 오는 눈을 하고 아주 귀찮은 몸짓으로 어슬렁거리며 걷는 아들의 걸음걸이가 참... 못마땅했다. 내 아이가 비를 맞고 걸어가면 옆에서 우산을 씌워주고 싶어야 정상일 텐데,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아이가 얄밉기만 하다. 변덕은 왜 그리도 죽 끓듯 하는 걸까. 우산을 안 가지고 간다니 서운했다. 서운할 건 또 뭐람. 사춘기 소년이 문제가 아니라 소년의 엄마가 더 방황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란 말인가.
불만 가득, 짜증 가득, 세상사 귀찮음으로 가득한 사춘기 소년에게,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침의 인사를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솔’ 음으로 목청도 가다듬었다. 사랑을 가득 담아 외쳤다.
”잘 다녀와! “
아이가 앉았던 자리에는 복이가 차에 타고오는 내내쓰다 벗어놓고 간 헤드셋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그 귀마개를 갖다 버리고 싶다. 헤드셋이 무슨 죄라고.
가랑비가 내렸다. 금방 그친 비가 야속했다. 괜스레 아침부터 내 속만 끓였다. ‘중2병’이라더니 그 병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앓는 것일까.
너의 귀는 좀 열자. 나의 입은 좀 닫자. 그럼 우리의 대화가 한결 편안해질까? 나만 불편한 걸까? 그 아이의 속을 들여다 보면 참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