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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아들, 딸기코가 된 사연

by 눈항아리 Mar 26. 2025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요.


학교에서 막 돌아온 중2 아들이 말했다. 학교 폭력을 당했나? 세상 사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세상 해맑은 내 아들이 그런 험한 말을 하다니. 아이가 많이 힘든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욱 불안하다.


“엄마 돈 좀 주세요. ”


‘돈은 얻다 쓰게 응? ’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했다. 눈은 충혈되었다. 한참을 울었던 걸까? 사는 게 힘들어서? 누구랑 엄청 싸운 걸까? 남편에게 맞았는지 몸을 좀 살펴보라고 해야 할까? 얼마나 울었는지 딸기코가 되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돈은 왜 달라는 걸까? 돈을 뜯기는 걸까? 상납? 당장 갖다 바쳐야 하는 걸까? 이렇게 대놓고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해서 친구에게 갖다 바치는 걸까?  온갖 상상을 다 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


“병원 가려고요. 콧물이 계속 나와. 죽는 줄 알았어. 살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


그 와중에도 아이는 계속 흐르는 코를 닦아내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혼자 병원에 가 본 적이 없다. 내가 병원에 가자 몇 번을 졸라 끌고 가야 마지못해 따라오는 아들이다. 그런 아이가 얼마나 급했으면 엄마의 카드를 들고 혼자 병원에 간단다.


“엄마가 같이 가줄까? ”

 

“아니요. 금방 갔다 올게요. ”


휑하니 나갔던 아이는 금방 약봉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장하다 아들. 이제 혼자 병원도 다니는구나. ’


약을 먹고도 차도가 없다. 아이는 누워서 한참을 쉬었다. 학원 하나는 건너뛰고 수학 학원은 간다고 나섰다. 마스크를 쓰라고 잔소리를 했다. 안 쓸까 봐서 하나는 손에 쥐여주고 지퍼백 포장이 된 5개입 마스크는 가방에 넣어줬다. 그래도 꿋꿋하게 마스크는 안 쓰고 나갔다. 내 아들이 미세먼지가 자욱한 길을 걸어 간다. 꽃바람 날리는 봄날의 따스한 그 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아침의 아이는 정신을 못 차린다. 소파 옆 따끈한 빨래에 기대어 다시 잠이 들었다. 밤새 코가 막혀 잠을 못 잔 것이 분명하다. 옆에 끼고 잘 때는 베개도 받쳐주고 물수건도 널어주며 아이가 숨을 잘 못 쉴 때면 나도 같이 잠을 설치며 애를 썼는데, 방을 따로 쓰니 관심 밖이 되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안 들리니 아이의 상태도 나 몰라라 한다. 엄마라는 사람도 그렇다. 조수석에 타고 가는 초췌한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밤새 고생한 아들의 힘듦이 보인다.


“많이 힘들면 조퇴해. ”


대답 없는 아들.


“커피 마시지 말고, 그냥 자. ”


역시 대답 없는 복이 녀석.


녀석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또 편의점 행이다. 험한 일상을 오늘도 살아가야 하는 아들 녀석은 정신을 깨우러 편의점으로 간다. 아이에게 쉼을 주고 싶다. 그러나 잠시 쉬어도 된다고 엄마가 말해도 아이 스스로 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에게
봄날은 가혹하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면 우리 집 남자들은 딸기코가 된다. 우리에게 봄날은 너무나 길다. 그러나 폭풍 콧물에도 굴하지 않는 그들은 긴 봄을 지나 찬란한 여름을 맞을 것이다.


이 땅의 비염인들이여,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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