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숲 하늘 위로 주황 기운이 퍼진다. 하늘을 보며 달린다. 나무숲이 밝아지고 훤한 마당을 거쳐 빛은 오로지 나를 위해 빛난다.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랬다. 그래서 좋았다. 빨래만이 유일한 동무였다. 그런데 7시에야 알람을 듣고 겨우 일어나던 남편이 이제 6시에 일어난다. 기나긴 연습을 통해서 체질 개선을 하듯 기상시간을 바꿔나가겠다 선언한 것이 한 달이 넘었다. 안 그래도 밤에 늦게 자는 남편은 새벽에 자주 깨 고생을 하더니 수면 패턴을 살펴보고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퇴근 후 바로 자는 날이 많아졌고 얼마 전부터는 6시에 몸을 일으킨다. 잠이 늘 부족하니 몸이 쉬라고 4시, 5시에 일어나지만 누워 있는다고 했다. 그랬다. 그래, 뭐 남편은 어른이니까. 나처럼 새벽 기상할 수도 있지.
오늘은 복이가 6시에 일어났다. 아이의 밤 운동이 남편의 밤잠을 방해한다는 등의 오랜 설득 끝에 복이가 드디어 처음으로 6시 아침 기상을 했다. 밤 운동을 못했으니 아침에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밤에 못 먹은 라면 야식을 아침에 먹겠다고 했었다. 과연, 진짜, 정말 먹을까? 설마설마했다. 과연 진짜 일어나자마자 편수 냄비에 물을 끓인다. 그 새벽에 계량컵을 어디에서 또 찾아와 물을 붓는다. 복아 너를 진정한 라면 마니아로 인정한다. 아이는 이루고야 만다. 그러곤 자전거를 타러 간다고 했다. 나야 설렁설렁 20분이지만 아이는 1시간 이상을 고강도로 탄다. 아침을 먹었으니 밥시간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타고 씻고 올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영향력, 가족이란 이렇게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라면의 영향은 절대 받지 말기로 하자. 다른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환기를 시켜야겠다. 라면 냄새는 귀신같이 우리의 공용 공간 곳곳에 퍼졌다. 다른 아이들이라고 아침의 라면을 마다할 리가 없다. 라면 그릇은 스테인리스 냄비다. 마지막 남은 툼바 라면의 누른 부분을 긁어먹는다. 쇠 긁는 소리가 우렁차게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새벽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 나의 공간이었다. 가족이 깨어나면 모두의 것이 된다. 함께 하는 공간과 시간. 그러나 운동을 하면 내 몸, 내 정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공유하는 공간은 나의 바깥에 있다. 내 신체와 내면에 다시 집중하자.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라면이 최고의 적이었다. 거봐, 좀 더 일찍 탈걸. 새벽 운동이 필요한 이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까만 밤이면 더 좋다.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더욱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다리, 나에게 집중해 보자. 팔을 들어 올린다. 목이 뻐근하다.
종일 나는 내가 아닌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진다. 아이, 밥, 집안일, 세상만사 화사한 봄꽃까지도 모두 나 이외의 것들이다. 내 몸을 움직이는 이 시간은 나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하자.
이제 복이가 라면을 다 먹었다. 빨리 가라. 자전거를 타러 가려고 한다. 한다. 물통에 물을 담는다. 담는다. 현관문을 나간다. 나가기 전 코를 훌쩍이며 양말을 찾아 신는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잘 타고 오라고 인사했다. 대꾸가 없다.
이제 다시 혼자만의 시간, 20분이 금방이다. 다 지나가 버렸다. 아쉽다. 라면 구경하느라 온 신경이 다 쏠려있었다. 내일은 좀 일찍 달려야겠다. 좀 더 어두울 때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