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unday farmers

움트는 순간의 기쁨을 위하여!

by 눈항아리

왜 우리는 옥수수 모종을 사서 안 쓰는 걸까. 종묘사에 가거나 시장에 가면 널린 게 모종인데, 한두 판만 사도 실컷 심을 수 있을 텐데. 씨앗을 굳이 심는 이유를 몰랐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남편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모종을 사 오면 사 오는 대로, 씨앗을 뿌리면 뿌리는 대로 그저 따른다. 그냥 따라만 하면 되는데...



처음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느낀 건 2001년 조카가 태어났을 때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얼굴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 애도 아닌데 생명의 신비에 그저 기분이 좋아 몇 날 며칠을 실실거리며 다녔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그 놀라움을 모두 경험한 탓이었을까, 정작 내 아이들을 낳는 건 생명 탄생의 기쁨이라기보다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던 것 같다.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의 기쁨은 크다. 그러나 수확의 기쁨보다 더 큰 건 생명이 움트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이다. 씨앗은 암흑과 같은 땅 속에서 더듬더듬 물과 바람과 햇볕을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흙을 헤치고 생명이 움트는 순간 씨앗의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농부의 얼굴에도 미소가 한가득이다. 기다림이 길면 더 애태우게 된다. 그건 덤이다. 기다림 끝에 태어난 생명은 더욱 고귀한 법이다.


종묘사에 죽 늘어선 모종을 안 사다 심고 남편이 굳이 씨앗을 뿌리는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 달의 시간 동안 기다리던 생강 싹이 뾰족하게 올라왔다며 얼마나 해맑게 웃는지, 남편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도 언니가 아이를 낳았을 때 내 애도 아닌데 세상을 다 가진 것과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남편은 사서 쓰는 모종값과 씨앗값을 비교해 보았다. 흙을 채우고 물을 주는 등 농부의 품을 보태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사서 쓰는 모종이 훨씬 싸다. 분명 모종을 사서 쓰자고 합의를 했다. 그런데 돌아서서 씨를 채종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그를 봤다. 생명 탄생의 신비에 재미가 들렸나 보다.


남편은 마구 씨를 뿌리고 다닌다. 열무씨를 뿌렸다. 열무는 창가에 뿌렸다. 마구 뿌려서 마구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마구 뿌리는 씨앗은 나중게 가면 다 솎아줘야 한다. 3년 전 엄청나게 구입한 씨앗들이 많다. 빨리 심어줘야 하는데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씨앗들을 밭에 직파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급기야 남편은 모종 판을 구입했다. 뚜껑이 있는 모종판이다. 광발아를 위한 전등까지 달린 모종판이다. 처음 온 것은 8구짜리, 샘플 온 것을 보고 40구 짜리도 시켰다. 빛은 없고 뚜껑만 있는 모종트레이도 시켰다.



나도 질 수 없다. 광발아는 안 해도 되니 뚜껑 달린 것으로 몇 개 부탁했다. 이런! 이제 남편을 따라 나도 씨를 뿌린다. 더불어 데이지, 수레국화, 백리향, 토끼풀, 스위트바질 등의 씨앗도 주문했다. 먹는 것에 관심이 지대한 남편과 달리 먹는 것과 거리가 먼 식물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내가 시킨 씨앗 중 먹는 것은 청경채뿐이다.


남편은 모종트레이가 오자마자 상토를 넣고 물을 뿌린 후 상추를 심었다. 내 것은 수레국화를 심었다. 하루 이틀 지났는데 투명 창으로 계속 싹이 트나 안 트나 확인하고 있다.


일주일 전 마당에 손수 뿌린 코스모스와 바질의 생사를 확인했다. 코스모스는 몇 개 올라왔다. 9개 정도가 튼실하게 올라왔다. 나는 아기 코스모스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가졌다. 그런데 바질은 잡풀과 구분이 안 된다. 망했다.



흙에 뭘 심으면 식물이 더 잘 보인다. 뭘 더 심을 수 없을까 매의 눈으로 마당을 어슬렁거리는데 남천이 보인다. 고동색 열매가 달려있다. 남천 줄기를 흔드니 갈색의 열매가 후드득 떨어진다. 안 떨어진 걸 모아다 화단에 줄줄이 심었다. 줄기를 조금 잘라 물꽂이 해놨다. 현관문 앞 라벤더를 잘라 물꽂이 했다. 부창부수랬던가. 내가 심은 코스모스가 올라오고 옥수수가 올라오니 마음이 동하여 그랬던 것 같다.


눈으로 여러 씨앗을 훑고 다닌다. 꽃이 핀 자리에는 열매가 맺히기 마련이다. 가게 마당에 피어났던 모란은 씨앗을 받을 수 없을까? 초록잎 무성한 모란 앞에 서서 한참을 구경했다. 꼬투리가 벌어진 열매가 있다. 아하! 저 안의 것을 벌써 내뱉었구나. 아직 여물지 않은 씨앗을 하나 뜯어서 속을 갈라보니 하얀 열매가 고추 씨앗처럼 빼곡히 들어있다.

“여보, 모란 씨 받자.”

남편은 망사 주머니를 달아놓을까 말까 한다. 망사 주머니를 또 한 묶음 살까 하다 말았다. 매일 보고 꼬투리가 벌어지기 직전에 우리가 채종 하기로 했다.


남편은 새로 올라온 영산홍 가지를 삽목하고 있다. 일부는 땅에 바로 심었다. 무화과나무는 잘라서 그냥 땅에 두 개 꽂아놨다. 하나는 힘이 없고 하나는 잎이 생생한 것으로 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가게에 무성한 영산홍은 삽목을 한 후 잘 키워서 집 주변 바위틈에 더 옮겨심기로 했다. 모아 심기도 좋을 것 같다.


씨앗과 트레이가 계속 배달되고 있다.


실제로 씨앗과 모종 가격을 나중에 비교해 보곤 좀 억울해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씨앗 심기가 멈추었을까? 지난밤에는 글쎄 우리 남편 농부 님 수박 씨앗을 채종했다. 맛있는 수박의 씨를 모아 맛있는 수박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씨앗을 잘 씻어 가져가고 남은 수박을 아이들에게 밀어주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남말할 일이 아니다. 낮에 모란 씨 받자고 한 사람이 누구던가! 자중하자. 좀.


이게 다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구경하기 위한 작업이다. 부부가 쌍으로 꽂혀버렸다. 마지막에는 글쎄 밭에 모종을 위한 비닐하우스를 짓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남편의 머릿속에는 벌써 관수 계획이 세워졌고 몇 센티미터를 어떤 각도로 하우스를 세울 것인가 구상에 들어갔다. 나는 옆에서 말려야 하는데 자꾸 부채질을 하고 있다. 이러다 우리 부부 육묘장 사장님이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sunday farmer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플라스틱 컵 온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