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으로 이사하면 아이들이 오이, 호박, 고추 따고, 감자, 고구마 캐며 온갖 농촌 체험을 하며 즐거울 줄 알았다.
우리는 몇 해에 걸쳐 갖가지 체험을 했다. 아이들이 밭에 나와 오이, 호박, 고추를 땄다. 감자와 고구마 땅콩을 캤다. 수확한 감자를 쪄먹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옥수수를 삶아 먹고 미니 뻥튀기 기계로 뻥튀기도 만들어 먹었다. 땅콩을 말려 껍질을 손수 다 까서 로스팅 기계에 구워 먹었다. 작두콩을 말리고 직접 구워 구수한 차로 마셨다. 상추를 뜯어 고기 파티를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 모두 좋아했다. 우리가 심어 먹는다는 즐거움에 기꺼이 밭에 나왔다. 장화를 신고 신나게 흙과 한 몸이 되어 있는 땅콩 뿌리를 뽑아내던 아이들이었다.
시골로 이사온 첫해, 초등학교에 입학도 안 한 막내 복실이까지 창 넓은 노란 모자, 분홍 모자를 쓰고 밭으로 나왔다. 햇빛 차단을 위해 엄마의 쿨토시도 하고 앙증맞은 어린이용 목장갑을 꼈다. 복실이는 오빠들의 하늘색 장화를 신고 나왔다. 달복이도 크기만 다른 하늘색 장화를 신고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밭으로 나왔다. 꼬마들 손에 바구니 하나, 호미라도 하나 쥐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큰 아이들 역시 호기심에 몇 번 밭에 나왔다. 바퀴 달린 농사 의자에 앉아 보고 풀도 매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가족 영농하는 주말 농장이 될 참이었다.
몇 해를 보내며 아이들은 차차 깨달았다. 농사는 놀이가 아니고 일이구나. 밖에서 하는 일은 힘들구나. 햇볕이 뜨겁구나. 장난이 아니구나. 밭에는 벌레가 있구나. 풀이 많구나. 큰 아이들은 이제 무거운 것을 들 때 가끔 부모의 부탁으로 밭에 나와준다. 큰 아이들은 20킬로그램 퇴비 자루도 덜렁 들 수 있는 귀한 일꾼이다. 꼬마들은 가끔 엄마, 아빠에게 물을 주러 밭까지 걸음을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농사일을 하러 나오지 않는다.
배가 아파 학원 수업 중간에 데리고 온 복실이. 내 옆에 데려와 앉혀놓고 가게 마당에서 꽃모종을 만들었다. 복실이가 쪼르르 따라 나와 저도 하겠다고 했다. 나는 흙을 채우고 복실이는 물을 뿌렸다. 나는 작은 구멍을 내고 복실이는 칸칸이 씨앗을 뿌렸다. 다시 흙을 덮고 분무를 했다. 신나서 씨앗을 뿌렸다. 흙에 물을 뿌리고 하늘에도 뿌렸다. 배가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다.
달복이도 왔다. 물 뿌리기 경쟁이 붙었다. 데이지 씨앗을 뿌릴 때는 물 뿌리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달복이가 바질 씨에 관심을 보인다. 지난번 집 마당에 몇 알 뿌려둔 바질 씨앗은 달복이가 학교에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바질을 뜯어먹을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샀을까 궁금했는데 달복이가 까맣고 조그만 바질 씨앗을 달라며 손바닥을 펼치니 딱 생각이 났다.
달복이의 바질 씨앗은 애석하게도 풀에 파묻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니 바질을 잘 샀다 생각이 든다. 바질 씨앗은 달복이가 대부분 다 뿌렸다. 한 칸에 10개 들어간 것도 있다. 씨앗이 너무 작아 눈으로 식별이 잘 안 된다. 아이는 그 점을 노려 대충 흩뿌렸다. 나중에 나의 눈에 딱 걸렸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런데 바질은 뭣에 쓰지? 꼭 꽃을 봐야 하는 건 아니다. 잎이 많으니 우선 나물로 먹을 수 있나 찾아본다. 많이 심어 초록 잎 구경 하고 파스타 할 때 가끔 몇 잎 뜯어 넣고 샐러드에 몇 잎 뜯어 놓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달복아! 바질 몇 잎 뜯어오너라.’
그러면 달복이가 화단에 쪼르르 가서 잎 몇 장을 뜯어와 바로 먹는 거다. 흙에 씨앗을 넣으며 뜯어먹을 생각을 벌써 한다. 긍정적 시뮬레이션이 아주 훌륭하다. 그래도 한 봉에 너무 많이 들었다. 깨알의 반 보다 작은 크기의 씨앗이 2000개나 들었다. 바질 밭을 만들어도 되겠다.
데이지 씨앗을 뿌리고선 데이지 군락지를 검색해 본다. 이런 게 바로 사람의 욕심이다. 바질 밭을 만들고 데이지 꽃밭을 보겠다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라고 하자. 우리의 커다란 욕심에 얼굴 가득 웃음꽃이 핀다.
달복이와 복실이와 가게 작은 마당에 둘러앉아 모종을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 궁금한지 담 너머로 보다 쪽문으로 들어와 구경했다. 데이지 200개, 바질 100개, 설악초 14개를 심었다. 우리의 새싹이 잘 올라오면 좋겠다.
농사일은 힘들기만 한데 화단에 심을 꽃모종 만들기는 즐겁기만 하다. 꽃만 심고 청경채는 생각도 못했다. 먹는 작물의 씨앗을 심는 건 남편 몫이다. 그래도 남편의 부탁으로 단호박 모종 5개도 만들었다. 단호박은 어두운 데 두어야 싹이 나온다고 한다. 신기한 식물의 세계다. 심고 가꾸고 꽃을 즐기고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아이들이 알아가면 좋겠다.
남편은 수시로 가게 마당으로 나간다. 물조리를 들고 사온 모종에 물을 주고, 만든 모종에도 물을 준다. 내가 만든 꽃모종에는 물을 줄까 안 줄까. 준다. 하하. 바람이 계속 불어 모종의 흙이 금방 마른다. 비닐하우스 같은 실내에 두면 좋겠다. 뚜껑이 있는 모종판은 습도가 잘 유지된다. 뚜껑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우리가 심은 씨앗의 발아 온도는 20도 내외다. 날이 추워져 오늘은 집에 갈 때 실내에 넣어두고 가야겠다. 날씨가 이상하다. 너무 춥다.
sunday fa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