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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생강을 심었다

by 눈항아리


뻐꾸기 소리에 이어 모르는 새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숲을 건너온 바람의 소리가 들판 위 허공을 쓸고 지나간다. 문득 나는 왜 여기 앉아 있나 생각했다. 자칫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산을 한 번 휘 둘러보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람 소리에 취해있다 보면 생강 심은 자리를 잊게 된다. 삶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생의 이유를 묻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계속해서 찾을 수 없는 그 이유를 묻다 보면 삶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심은 자리에 다시 생강을 심었다. 심긴 생강이 호미에 찍여 나왔다. 아까운 거를 어째.


나는 쪼그리 농사 의자를 엉덩이에 달고 호미 하나를 들고 밭에 앉았다. 엉덩이에서 달랑거리는 쪼그리 농사 의자는 사뭇 남사스럽고 볼썽사납다. 일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망측해 보인다고 의자를 포기할 수 없다. 허약한 나의 허리, 다리를 보호해야 한다. 보는 사람이라고는 옆집 부부뿐이니 괜찮다. 삽목판에 마구 분질러 흙을 덮어두었던 씨생강을 심는다. 창고 온도가 일정해서 살기 좋았는지 하얀 눈이 많이 나왔다. 그저 흙에 덮어놓기 급급해 잘게 안 분질렀더니 양분이 많아서 그랬는지, 뿌리를 마구 뻗은 것도 있다.


생강 눈은 연약해서 살짝 잘못 건들면 부러진다. 눈이 부러지면 버려야 한다. 한눈 한번 팔지 못하고 못생긴 생강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보며 조그맣게 튀어나온 하얀 눈을 찾아 하늘을 보도록 뉘어놓고 흙을 덮는다. 그렇게 땅만을 보며 한참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 하늘 한 번 볼 새가 없었다. 쪼그리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라고 쪼그리 의자인가 보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있어도 새는 울어대고 바람은 불어댄다. 시간을 흘러가고 밥때는 찾아온다. 허리춤에 달아맨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복동아 라면 끓여서 동생들이랑 먹어라!” 나도 배가 고픈 것 같은데 남편은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가게에서 일할 때엔 10시부터 배고프다고 난린데, 들에서 일할 땐 때를 잊는다. 그 배꼽은 이상한 배꼽이다.


올해는 씨생강 40킬로그램을 샀다. 20킬로그램은 모종을 만들고 20킬로그램은 삽목판 흙 속에 막 넣었다. 일요일 하루 동안 모종을 다 만들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모종 700여 개는 이중 비닐하우스에, 삽목판 흙에 덮어둔 것은 창고에 두었다. 비닐하우스에 둔 것은 모종 만들기도 온도 조절, 물 조절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비닐하우스의 생강 모종은 이제 막 뾰족하게 싹이 올라오는 게 십여 개 남짓이다. 남편이 파 보니 어느 것은 썩었다 하고 어느 것은 눈이 그대로라고 했다. 2주 정도는 더 키워 밭에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창고에 두었던 삽목판은 흰 싹이 엄청 나와 흙을 뚫고 싹이 되어 나오는 것이 있고 뿌리가 생기는 것도 있었다. 자르지 않고 큰 것을 숭덩숭덩 부러뜨려 넣었더니 마구 눈이 생겨 난감했다. 흙에 넣어두고 되면 분질러 심고 안 되면 할 수 없지 뭐, 이러면서 보관 용으로 창고에 넣어 둔 것이 의외로 큰 성과로 돌아온 것이다. 내년에는 모두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삽목판에 넣어 창고 보관하기로 했다. 생강 모종 힘들게 만들어 물 주고 난방 돌리고 비닐 걷어주고 저녁에 문 닫아주고 알뜰살뜰 보살펴도 보람이 없다. 내년부턴 쉽게 생강싹을 잘 틔울 수 있겠다며 남편은 얼굴이 폈다. 폈어.


생강 두둑은 총 5개다. 두 줄씩 심는다. 간격은 사방 30센티미터 간격이다. 남편이 2주 전에 밭은 다 만들어 놨다. 그새 풀이 올라와 초록이 되었다. 남편이 관리기로 이랑을 한 번 갈았다. 나는 심는다. 내가 심는다니 간격을 알려주는 쇠막대기를 준다. 남편이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다. 나는 쇠막대기를 들어다 밭에 휘익 던져두었다. 호미로 대충 길이를 어림했다. 왼손에는 생강, 오른손에 호미를 들고 생강밭고랑으로 들어가 앉았다. 햇볕 아래에 앉아 일을 하면 처음엔 일에 집중한다.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다 새소리, 바람 소리에 신경 쓰게 된다. 소풍을 온 듯 한가롭다. 그러다 새소리가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자괴감이 든다. 들판을 기어서라도 나가고 싶다. 5개의 두둑 중 3개를 넘어가면서 빨리 일을 끝내고 싶어졌다. 마음이 급해진다. 계속 밭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보면 햇볕에 타버릴 것 같다. 드디어 일어섰다. 서서 허리를 잔뜩 굽히고 빠르게 생강을 먼저 놓고 호미로 흙을 덮는다. 일의 진행 속도가 배로 빨라진다. 잠시의 쾌속이 다음날 고통으로 찾아올 것을 안다. 그래도 일의 속도를 늦출 수 없다. 이미 밭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울었다.


호미만 겨우 창고에 넣어두고 의자는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밥을 하러 간다며 집으로 들어왔다. 복동이와 꼬마들은 게임을 하느라 바빴다. 복이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늦은 아침을 먹었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밥을 해 먹고 설거지는 미뤄두고 나도 잤다. 마당에선 연신 쇠 자르는 소리가 울렸다. 남편은 고춧대를 세운다고 바빴다. 우리의 일요일이 지나갔다.




삽목판에서 싹 틔운 생강 800여 개를 밭에 심었다.


그리고 공들여 키우고 있는 생강 모종 700개는 아직 남아있다. 모두 싹을 틔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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