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수 부족 현실을 마주하다
동네 양수기가 모두 마실 나왔다. 시골 집집마다 밭에 물을 푸느라 난리다. 물기 없는 흙은 포슬포슬 감자 분이 나는 것 같다. 푸석푸석 먼지가 난다. 짙은 고동색으로 기름지고 번지르르하던 땅이 허옇게 변하며 제 빛을 잃어간다.
길 가에 물 주는 경운기가 지정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한밤중에도 깜빡깜빡 경고등을 밝힌다. 경고등 없는 무적의 경운기가 그 앞에 하나 더 나타났고, 짐칸 없는 경운기도 하나 더 나타났다. 시골길 밤운전을 할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경운기 없는 밭에는 물대포로 물을 쏜다. 조준을 잘 못한다. 가끔 물이 산으로 간다. 동네 농부는 작은 하천에 못을 팠다. 양수기로 끌어올린 물이 감자밭으로 날아간다.
농사짓는 울 아버지도 5일 동안 감자밭에 물을 줬단다. 우리는 파란 물조리로 감자밭에 물을 줬다. 깜빡했는지 바빠서 그랬는지 일부러 그랬는지 감자 고랑에 물호스 설치를 안 했다. 감자가 한 줄이니 방심한 것 같다. 감자는 한 줄이니 괜찮다. 생강이 문제다.
생강밭은 넓다. 물조리로 물을 줄 수 없다. 텃밭용 스프링클러를 시험 삼아 써보았다. 밭 300평에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니 물 낭비가 심하다. 한 번에 충분히 흙을 적시도록 주기에는 지하수량이 턱없이 부족하단다. 작물에 효율적으로 물을 주기 위해 안개 분사 스프링클러도 일부 주문했다. 지난해까지 고추를 많이 지을 땐 점적 호스로 물을 주니 알뜰살뜰 사용해 물이 부족한지 몰랐다. 생강은 이곳저곳에서 솟아오르는 싹이 못 나올까 봐 걱정이 되어 점적호스를 못 깔았다. 생강 순이 탄다. 생강 고랑이 많기도 많다. 심은 것만 다섯 고랑. 아직 안 심은 것은 더 많다. 차양막도 바쁘고 물호스 설치도 바쁘다. 마음만 바쁘다. 안 보이면 걱정이 덜할 텐데. 집 앞에 눈에 뻔히 보이는데 물을 안 줄 수 없는 노릇이다. 바짝 말라가는 흙이 출근하지 말라고 일요일의 농부를 잡아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제시간에 출근은 힘들었을 테다. 물탱크 2개에 종일 채워진 물을 30분이 채 안 되어 모두 밭에 뿌리고 출근한다. 여기서 그칠 수 없어 남편은 당근에 빈 물탱크가 나오나 주시하고 있다.
지하수가 줄어드니 더 깊이 지하수 구멍을 뚫어 물이 콸콸 나온다는 옆집 얘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우리도 더 깊게 파야 하나? 텃밭과 같은 밭농사를 짓자고 더더더 깊은 지하수를 다시 뚫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남편은 발전기를 돌려 하천 물을 어떻게 퍼 올릴까 고심도 하고 있다. 그는 물 공부를 하며 더불어 종일 발전기 입출 부품인 쇳덩어리를 유심히 찾아본다. 가끔 뭘 하느냐 물으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나는 당최 뭔 소린지 알 수 없지만 역시 친절하게 들어준다. 물을 퍼올리는데 필요하다는 것만은 잘 알아들으니 다행이다. 남편은 새로운 기계의 세계에 심취하여 혼잣말을 하는 건지 강의를 하는 건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강에서 물을 어떻게 퍼올리는지 나도 어깨너머 유튜브 영상으로 구경했다. 굵은 호스에 구멍 뚫린 관을 씌우고 양파망과 같은 망사를 겹겹이 씌우고 강물에 척 담그는 걸 보았다. 나도 준비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것도 하천의 수위가 있을 때 얘기다. 농업용 지하수 수량이 부족하니 자꾸 마른 소하천 물을 끌어다 쓸 생각을 한다. 물에 어디 있어야 끌어다 쓸 것이 아닌가.
마른 날씨 끝, 이번 주말에 드디어 비소식이 잡혔다. 장마란다. 폴폴 먼지 날리는 바짝 마른 흙에 단비가 내리기 바란다. 그런데 또 엄청 쏟아지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다. 적당히 해주시길 바란다. 대체 누구에게 나는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이시여?) 내리는 빗물을 잘 모아 저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옛 조상 때부터 저수지를 만들고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나 보다.
물이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 먼 나라 얘기인 줄만 알았다. 몇 해 전부터 뉴스에서 봄가뭄 소식이 전해지면 남 얘기라고 생각했다. 당장 우리 밭 농작물에 줄 물이 부족해지니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도 물이 부족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농업용수 부족, 진짜 물부족이 현실을 마주하며 내년에는 생강 밭에 점적호스를 깔기로 남편과 잠정 합의를 했다.
물은 무한 자원이 아니다. 아끼고 소중히 써야겠다.
sunday fa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