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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unday farmers

작은 것이 우리에게 주는 큰 기쁨

by 눈항아리


깨알 반보다 작은 씨앗에서 깨알만 한 연두 새싹이 나왔다. 소복하게 뿌린 바질 씨앗이 마구 올라왔다. 씨앗을 뿌리고 5일째 되는 날 아침에 발견했다. 학교 다녀온 복실이에게 보여주고 둘이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마구 올라온 바질 싹을 보며 복실이는 달복이 오빠 손이 금손이라고 했다. 금손이 오빠가 한 칸에 열 개씩 뿌려댄 덕분에 이런 장관을 구경한다.

바질 새싹


하나, 두 개씩 뿌린 데이지도 몇 개 싹을 틔웠다. 앙증맞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포트에서 하나씩 찾으며 좋아했다. 흙 속에서 작은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

데이지 새싹

남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종일 올라온 새싹 개수 세느라 기쁨이 입에 걸려 있다. 마트에서 산 수박을 먹고 씨앗을 신줏단지 모시듯 했었다. 남편의 지극정성에 수박은 3일 만에 첫 발아가 되었고 지금은 또 새로운 집으로 옮겨졌다. 새로 지은 집은 내부를 은박지로 둘러쌌다. 사실은 이삿짐 박스다. 천장에 엘이디 전등을 달았고 시간에 맞춰 자동 타이머로 조절된다. 바닥은 철로 된 오븐 트레이를 깔았다. 그 위에 모종 포트를 놓았다. 빛을 충분히 쐬어 주면 웃자람을 방지할 수 있단다. 퇴근 후 야밤에 자르고 붙이고 하더니 재미가 들려도 제대로 들렸다. ‘수박아 너 제대로 잘 자라줘야 한다.’ 우리의 씨앗 중에 수박이 제일 무럭무럭 자란다. 남편은 나의 수레국화도 은빛 온실 속에 넣어주었다. 이 정성을 어쩔 것인가.


지난해 화단에 심어만 놨던 딸기는 집 앞으로 옮겨 관리되고 있다. 첫 번째 딸기를 따 먹었다. 딱 하나였다. 달복이와 복실이가 딸기 한 알을 나눠 먹었다. 지금은 두 개가 달렸다. 하나씩 자기 것이라고 점찍어 놨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왼쪽에 상추와 딸기가 있다. 밭까지 안 나가는 나와 아이들을 위한 작은 텃밭이다. 현관문 오른쪽으로는 부추와 총각무를 심었다. 열무인 줄 알았는데 알타리 무라고 한다. 역시나 남편 님께서 퇴근 후 관리하신다. 하루에 한 번 물을 주는데 얼마나 싱그럽게 잘 올라오는지 모른다. 거실 창문 너머로 조그만 무싹이 보인다. 그 옆에는 화단에서 옮겨 심은 부추도 있다. 화단 부추는 좀 질긴 것 같은데 자꾸 잘라 싱크대에 올려놓는다. 남편의 식물 사랑은 대단하다. 먹는 식물에만 지극정성이다.



나의 꽃은 마구 갈아엎는다. 먹는 식물만 알지 꽃은 일절 모른다. 일단은 꽃씨를 뿌려둔 나의 풀밭과도 같은 화단에는 절대 못 들어가게 했다. 출입금지! 그런데 풀이 무성하면 또 언제 예초기로 쳐버릴지 모른다. 얼른 풀을 매야 하는데 짬이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꽃밭이 될 나의 풀밭에도 꽃 새싹이 몇 개 올라왔다. 코스코스다. 풀보다 존재감이 없지만 5개 보다 더 많이 올라왔다. 나도 한참을 앉아 살펴봐야 보인다. 사진을 찍어도 얇은 코스코스는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어딘가, 작은 씨앗에서 풀만큼 자란 것이. 대견하고 대견하다.


5월 11일 심었던 코스모스가 이만큼 컸다.



복실이와 5월 11일에 코스모스 씨앗을 심었다. 스무날 만에 코스모스가 한 뼘만큼 자랐다. 새싹이 다 올라오지는 않았다. 스물몇 개 심어 대여섯 개 싹이 올라왔다.


“가을에 코스모스 볼 수 있겠다.” 복실이가 아기 코스모스를 보고 그랬다.


“우와! 딸기 따먹어야겠다.” 복실이가 빨간 딸기를 보고 그랬다. 맛이 엄청 시큼하다는데도 좋단다. 과연 우리 차례는 올 것인가. 하하. 복실이는 달복이 오빠가 일어나면 딸기를 보여주겠다며 마구 깨우고 있다. “오빠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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