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강하다
비닐 멀칭도, 제초매트도 안 깐 허허 들판 생강밭에서 남편은 아침마다 풀을 뽑는다. 첫날은 긴 호미로 슥슥 긁기 좋다고 했다. 둘째 날은 쪼그리 의자에 앉아 호미질을 했다. 셋째 날은 하루가 다르게 풀이 자란다고 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김매는 호미의 속도가 풀뿌리 뻗어나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풀이 어릴 때 미리미리 긴 호미로 긁어 줄 것을 그랬다며 남편은 후회했다. 그렇게 일요일을 맞았다.
다섯 줄 생강밭이 초록과 흙으로 얼룩덜룩하다. 하루아침 밭에 나가 찔끔. 출근 준비하라고 소리 높여 부르면 할 수 없이 풀 매던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가던 농부 남편. 다음날 밭 나가면 또 다른 줄에 가서 찔끔, 그렇게 줄도 없이 차례도 없이 풀을 매 놨다. 그다음 날은 연속이 아니라 발이 닿는 곳에 그냥 철퍼덕 앉아서 맨 것일까? 다른 일을 하다 조금씩 그냥 풀 맛만 본 것일까? 이 뺀 어린아이 텅 빈 치아 모양처럼 풀과 흙이 듬성듬성 어째 피아노 건반 모양 같기도 하다.
나는 한쪽 끝에 앉아서 시작했다. 양쪽 고랑은 기계가 들어간 지 한참 되었다. 풀 길이가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것도 있다. 마지막 고랑은 제초매트를 깔자고 했는데 앉아서 한 고랑 풀을 매고 나가면서 이랑의 작은 풀은 뽑고 고랑의 큰 풀은 안 뽑자니 영 찜찜하다. 일은 확실하게 첫 줄인데 말끔하게 해치우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필요 이상으로 호미를 꼭 쥐고 팔을 높이 쳐들었다. 최선을 다해 흙을 향해 호미의 가장 뾰족한 부분을 내리찍었다. 온다던 비는 찔끔 내렸다. 호미로 풀뿌리를 들어 올리니 폴폴 흙먼지가 일었다. 그렇게 온밭을 호미로 내리찍고 긁었다. 호미 자루에 달린 묵직하고 늘씬한 쇳덩어리가 쑥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시작은 힘찼다. 그러나 한 고랑의 3분의 1을 채 나가지도 못하고 고민했다. 그냥 이 길을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낫을 들고 석석 베어버리고 말까.
땅에 딱 달라붙어 내리는 줄기마다 뿌리를 내리는 바랭이풀의 강력한 생명력에 기가 질렸다. 풀뿌리는 땅 깊이 뿌리를 박고 만나는 뿌리마다 엉겨 붙어 어깨동무를 한다. 풀에게 ‘함께’의 의미는 생존이다. 뭉치면 더욱 강력해진다. 뭉쳐야 산다. 하나의 바랭이를 뽑아내기 위해 나는 세네 번의 호미질을 해댔다. 호미질로 안 달려나오면 다섯 손가락을 흙 속에 넣어 뿌리를 움켜쥐고 뜯어냈다. 흙에서 파낸 것이 아니라 뿌리가 뜯겨져 나가는 느낌이 확연하다. 바랭이는 거센 호미질에도 결코 죽지 않는다. 뿌리를 남기고 뜯겨져 올라올 뿐이다. 첫 줄에서 거대 바랭이를 만난 건 행운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시작의 열정을 모아 모아 첫 줄 김매기를 마쳤다.
둘째 줄부터는 고랑의 풀은 없었다. 남편 농부가 미리 긴 호미로 모두 긁었다. 대신 순이 나오지 않은 생강을 피해야 해서 호미질을 마구 할 수 없었다. 눈을 감은 것처럼 손으로 더듬더듬 풀뿌리까지 잡아 뽑아냈다. 아침 일찍부터 밭에 앉아있던 남편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긴 호미를 들고 다른 밭고랑을 매러 일어섰다. 나는 차례를 아는 사람이다. 진도를 착착 빼는 사람이다. 꾸준히 한 자리에서 밭을 매는 사람이다. 생강밭 을 다 맸다. 남편이 일주일 동안 김매기를 해놔서 다 할 수 있었다. 4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올해의 본격적인 김매기 시작이었다.
김매기를 하며 인생을 배운다. 특히 바랭이와 싸워봐야 인생의 쓴맛을 알 수 있다. 그래, 인생을 논하기 딱 안성맞춤이다. 남편도 바랭이 바랭이를 외치며 굳은 결심을 하지 않던가. 미리미리 작을 때 풀을 뽑겠다 하지 않던가. 풀 계획, 풀 다짐을 하게 만드는 바랭이다.
그럼 생강밭 김을 매며 바랭이에게 배운 인생의 교훈을 풀어볼까.
부지런해야 한다, 바랭이 보다
억세야 한다, 바랭이 보다
빨라야 한다, 바랭이 보다
힘이 세야 한다, 바랭이 보다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바랭이 보다
견뎌야 한다, 바랭이 보다 더
호미 날을 더욱 세차게 내리 찍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바랭이 보다
꾸준해야 한다, 바랭이 보다
노력해야 한다, 바랭이 보다
햇빛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바랭이 보다 더욱
틈새를 찾아야 한다, 나도 바랭이도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펼쳐야 한다 나는 꿈을, 풀은 뿌리를
그리고
뭉치면 더욱 강해진다 바랭이의 뿌리처럼.
다음주가 되면 다 뽑아낸 생강밭의 풀은 아기자기 새싹과 같은 연둣빛 귀여운 모습으로 삐죽거리며 올라올테다. 그 예쁜 걸 보자고 풀과 싸우는 게 절대 아니다. 풀은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작은 풀 한 포기를 뽑느라 황금같은 일요일을 다 허비하고 그래도 호미로 김매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초보 농부다. 우리는 언제까지 제초제나 생육억제제 사용을 피할 수 있을까.
풀약을 뿌려 누렇게 타들어간 밭두렁, 논두렁을 지나치며, 풀이 나지 않는 남의 밭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나는 매일 생각한다. 뿌릴까? 유기농,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도 있다는데 뿌릴까?
오늘 풀과의 싸움은 끝났지만 이긴 자는 없다. 유혹은 계속되고 풀은 계속 자란다. 비가 온다. 빗물을 만난 풀뿌리가 좋다고 뻗어나갈 테다. 누운 풀뿌리도 슬금슬금 뿌리 끝을 흙 속으로 집어넣을 지도 모른다.
풀은 강하다.
sunday fa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