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loomy day
머리가 멍하다. 하늘이 흐리멍덩해서 그런 걸까? 그루미한(gloomy) 하늘, 낮게 깔린 짙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려댈 것 같다. 이렇게 구름이 하늘을 땅 가까이로 데려오는 날이면 마음의 하늘도 낮아져 땅 가까이로 가라앉는다.
눈꺼풀이 무겁다. 코가 맹맹하다. 며칠째 코가 막혀있다. 봄날이 가며 아이들의 비염도 모두 가버렸는데 다들 살만하다는데 나는 여름철 비염인 것인지, 여름 감기인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코가 막혀서 멍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콧물이 흐른다. 눅눅한 대기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잠을 덜 자고 막 깨어난 것처럼 의식이 흐리멍덩하다. 습기 가득한 공기를 피해 뽀송한 털 담요를 뒤집어쓰고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다.
이런 멍한 상태로 밥을 해야 한다. 주부의 숙명은 구름이든, 구루미든, 그루미(gloomy)든 상관을 안 한다. 한결같이 밥통을 열어야 하고 전기 레인지에 냄비를 올려야 하고, 프라이팬을 올려 기름을 둘러야 한다.
아침은 간단하게 생선조림이다. 반건조 볼락을 조리해야만 한다. 엊저녁 미리 냉동에서 냉장으로 옮겨 해동을 하고 있다. 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해동한 생선을 들고 차를 타기는 싫다. 한 시간이면 조리 시간도 넉넉하다. 뇌의 상태가 평범하지 않으니 평소보다 간단하게 조리한다. 냉장고에 한 다발 있던 대파를 씻어 모두 넣었다. 대여섯 뿌리? 낮은 냄비에 파를 깔았다. 칼질은 생략. 생선을 올렸다. 간장, 고춧가루를 뿌렸다. 설탕이 없다. 어쩐다. 가게에는 15 킬로그램 설탕을 재 놓고 쓰는 사람이 집 설탕 채워 놓을 정신이 없었다. 그냥 깜빡이 버튼을 눌러 놓고 잊은 것뿐이다. 집에서 반찬을 할 때 빈 설탕 통을 마주한 것이 열 번 이상은 된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설탕이 없었다. 그건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다. 당장 급한 것이 아니면 빨간 불이 왱왱대며 경고등을 켜지 않는 법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머니표 매실청을 꺼낸다. 국자로 한 국자 대충 퍼서 냄비에 성의 없이 뿌린다. 그렇다고 끈적거리는 매실청을 냄비가 아닌 곳에 흘린다는 건 절대 아니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냄비에 투하했다. 후추 톡톡 뿌리고 물 반 컵을 넣고 냄비 뚜껑을 닫았다. 뭔가 안 넣었다. 기름을 살짝 둘러야 하는데... 기름이 없다. 헐~~ 들기름도 아보카도유도 카놀라유도 해바라기유도 어떤 식용유도 없다. 오래된 전 내 나는 버려야 하는 참기름 병이 양념통 안쪽 구석에서 나왔다. 내가 산 것이 아닌 어떤 경로로 우리 집에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름이다. 기름을 포기해야 할까.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정면은 텅 비어있다. 문쪽에서 하얀 튜브와 같은 말랑한 통을 꺼냈다. 냄비에 하얀 물질을 한 덩이 짜 넣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퀴즈. 답은 답글에. 나도 이런 걸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답글을 달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하. 나도 이런 실험은 처음이라 맛이 괜찮을까 잠시 걱정을 해보았다. 하지만 기름과 식초로 만든 것이라 별문제가 없지 않을까?
(그런데 깜빡 잊고 있었다. 생선조림에 기름과 식초를 배합해 만든 물질을 넣었다는 것을. 점심 반찬으로 싸간 냄비를 열었을 때 생선 구석에 하얗게 찌꺼기같이 이상한 성분이 모여 있는 걸 보고선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었다. 그것이었구나.)
생선 반찬은 맛있었다. 멍하게 만들어도 대성공이었다.
점심밥을 할 때도 상태가 마찬가지다. 아 밥이여. 그루미한(gloomy) 밥이여. 생선 반찬이 있으니 된장국을 끓여볼까? 생선조림용 무를 꺼낸다. 커다랗게 썰어서 가게 냉동실에 넣어둔 것이었다. 어쩐지 집에 없더라니. 두 덩이의 무를 넣고 물을 부었다. 파 두 뿌리를 가위로 잘랐다. 둥근 호박 반 개를 숭덩숭덩 아무렇게나 잘라 넣었다. 이렇게 멍한 날은 조리 도구를 피하고 싶다. 설거지를 최대한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른다. 호박은 도마에 놓고 썰지 않아도 좋다. 단단하지 않은 둥근 호박이라 그렇다. 둥근 호박이 나오는 동안에는 애호박은 안 사 먹는다. 곧 우리 밭에도 둥근 호박이 열릴 거다. 호박아 빨리 나와라. 식칼로 조금씩 잘라 물에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보글보글 끓는다. 이제 장을 넣어볼까. 고추장 조금, 짠 된장, 안 짠 된장 한 숟가락씩을 넣는다. 시판 된장도 이것저것 섞으면 고향의 맛이 난다. 애초에 나는 엄마표 된장 맛을 모른다. 아~ 짜다. 물을 한 컵 더 넣고 푹 끓인다. 다른 걸 더 안 넣어도 호박이 풀어지면서 구수해진다. 나는 둥근 호박 된장국이 좋다. 달복이 생일에 끓인 미역국이 한 그릇 남았는데 그걸 먹어치울까? 된장국을 먹을까? 고민되었다. 된장국을 한 그릇씩 펐다. 생선 반찬에 된장국. 그럼 소담한 시골 밥상으로 차려볼까?
냉장고를 연다. 상추와 오이를 꺼낸다. 상추는 사각 바구니에 들어있다. 많으니 조금만 꺼낸다. 초록색 빳빳한 상추, 자글자글 상추 두 종류다. 상추 부자 여기 있다. 매끼 10장씩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양의 상추가 수확되고 있다. 스테인리스 볼에 물을 가득 담고 상추를 씻었다. 담갔다 건지고 물을 바꿔 담갔다 건지기를 반복한다. 한 그릇 풍성하게 담아 놓는다.
오이 껍질을 깎는다. 껍질은 소금으로 박박 문지르면 되는데 오늘은 ‘그루미한’ 날이니 그냥 감자칼로 벅벅 가볍고 길게 긁어낸다. 위아래 꼭지를 따내고 길게 반을 자른다. 조금 도톰하게 어슷 썰기를 한다. 볼에 담고 굵은소금을 한 줌 집어 뿌린다. 물을 조금 뿌린다. 한쪽에 놓고 5분 10분... 얼마나 기다렸을까... 숨이 안 죽은 것을 뻔히 알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헹궜다. 물기를 짜면 좋은데 귀찮다. 물을 대충 따라 버리고 설탕을 확 뿌린다. 조물조물하면 좋을 것 같은데 비닐장갑을 가지러 가기가 천리만리, 구만리 길이다. 숟가락 두 개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섞는다. 고춧가루를 조금 애벌로 흩뿌린다. 색깔을 낼 때 누군가 이렇게 하는 걸 봤는데 무생채를 할 때였던가? 역시나 조물조물해야 색이 배일 것 같은데 끝까지 숟가락 두 개를 고수했다. 소금 조금 뿌리고 고춧가루를 빨간색이 나게 마저 뿌렸다. 마지막으로 식초를 넣었다. 사과 식초를 넣고 싶지만 양조식초만 보인다. 훅 넣고 설탕과 소금 알갱이가 안 보일 때까지 섞는다. 달달하고 시큼하고 간이 딱 맞다. 반찬 그릇에 담고 깨소금을 솔솔 뿌렸다.
눈이 반이 감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밥을 먹어야 장사를 한다. 생선 가시를 잘 못 바르는 남편은 가끔 생선을 뼈째로 입에 넣는다. 꼭꼭 씹어 먹으면 된다나? 남편은 아는 게 많지만 내륙 사람이라 생선의 구조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가 캑캑 거리는 걸 몇 번 본 이후로는 아이들에게 생선 가시를 발라줄 때처럼 남편의 생선 살을 먼저 발라준다. 다행히 볼락은 살과 뼈가 잘 분리가 된다. 남편이 먼저 상추에 생선을 올린다. 밥을 올리고 오이를 얹은 후 동글게 말아 입에 넣는다. 나도 한 입 스스로 싸 먹었다. 꿀맛이다.
꿀꿀한 날에 먹어도 맛있는 꿀맛 쌈밥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먹먹하다. 비는 언제 내리는 걸까? 그냥 시원하게 쏟아지면 좋겠다.
*나는 gloomy란 단어를 좋아한다. 한국말로 ‘구루미’라 쓰면 좋겠다. 구름 낀 날, 우울한 하늘, 먹먹한 마음을 표현하기 딱 좋은 말 같다. 글에서는 그루미(gloomy)라 표기했다.
*진짜 영어 발음! gloomy는 [글루미]라고 발음한다. 몇 번을 발음을 들어봐도 참 아쉽다. 글루미는 구름 같은 느낌이 안 든다.
평소 ‘그루미’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쓴다. 글에서 쓸 적당한 말을 찾다 보니 우리말로 ‘꿀꿀하다’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루미한 날’은 어두운 몇 겹의 장막에 싸인 듯 분위기가 짙어 보인다. ‘꿀꿀함’은 왠지 좀 짓궂고 가벼운 개구쟁이의 표현 같다. 그래도 나는 한국인! 외국어를 빼고 ‘꿀꿀한 날’로 제목을 정했다.
*‘구루미’는 구름의 옛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구름, 구루미, gloomy 다 좋다.
단어가 풍기는 느낌을 음미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글을 적어 내려갈 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단어를 나열하면서 나는 점점 생기가 돌았다. 점심을 지나 오후가 되면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래도 콧물은 여전하다.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봐야겠다.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