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백합은 화려하게 폈다 장엄하게 쪼그라들었다. 색을 잃은 꽃잎은 말라 땅 위로 떨어졌다. 단단한 잎 사이로 늘어져 있다. 꽃이 지고 나니 백합은 더 자란 것 같다. 잎은 더욱 짙은 초록이 되었고 빳빳해졌다.
노란 백합이 지고 나니 흰 백합의 꽃봉오리가 생겼다. 언제 피나 궁금했다. 아침마다 출근하며 뒷마당 앵두나무 옆을 살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전해온 불행한 소식. 하얀 백합의 고개가 꺾어졌다. 참새가 밟았는지 어쨌는지 꽃대가 부러졌단다. 아까워서 어쩌나. 남편도 백합이 안쓰러워 앵두나무에 살짝 걸쳐 놓았단다. 살짝 이어진 줄기를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했단다. 살아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꽃을 모르던 남편이 꽃을 구해줬다. 나의 흰 백합을! 봄날에 이상한 풀이라며 뽑아버렸다는 그 백합을!
백합꽃은 다행스럽게도 말라죽지 않았다.
노신사 앵두나무에 턱 하니 고개를 걸치고 우아하게 피어났다. 앵두나무에 기대고 선 모양이 언제라도 쓰러질까 불안하기는 하다. 흰 꽃이 지고 나면 백합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꽃의 운명이라니 좀 우습기도 하다. 봄에 어이없게 잡초 취급을 받기도 했으니 순탄하지 않은 운명이라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가을이 되면 구근을 나눠 흰 백합을 몇 뿌리 더 만들자고 했다.
가녀린 그녀의 손을 잡아준 당신 고맙습니다. 꽃을 피워준 당신도 고맙습니다. 꽃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준 당신도 고맙습니다. 고마운 당신들이 있어 오늘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