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피한 적 있나요?

잠자리 수다

by 눈항아리


잠자리에 누워 창피한 것 말하기 릴레이를 펼친다. 끝말잇기를 하는 것처럼 이어간다. 어두운 방 이불에 누워 입이 얼마나 즐거운 지, 누가 누가 수다왕인지 겨루는 것 같다.


엄마 : 양말 발가락에 구멍이 났을 때 창피했어.

달복 : 사람들 앞에서 넘어질 때 창피해.

복실 : 사람들 앞에서 울었을 때 창피해.

엄마 : 머리가 뻗었을 때 창피했어.

복실 : 원래는 휘파람을 잘 부는데 잘 못 불었을 때 창피했어. (휘파람을 막 부는 복실 양, 밤 12시 임.)

엄마 : (코파는 달복이에게) 콧구멍 파다 사람들에게 걸렸을 때 창피할 것 같아.

(그걸 먹는 달복이)

엄마 : 그걸 글쎄 먹는 걸 사람들에게 들켰을 때 정말 창피하겠다.

달복 : 아니야 사람들 있을 땐 한 번도 안 들켰어.

엄마 : 그런데 엄마한텐 맨날 들키잖아.

달복 : 엄마한테 들키는 건 안 창피해.

복실 : 나는 방귀 뀌면 창피해.

달복 : 냄새가 퍼지는데 사람들이 그러지. 이건 무슨 냄새야? 그러면 정말 창피해. 하하하.



복실 : 그리고 모나리자 머리가 됐을 때도 창피해. 머리에 떡지는 거.

엄마 : 그러니까 좀 씻으라고.

왜 가족끼리 있을 때는 안 창피하지? 우리는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서 그런 걸까? 그게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창피한 걸 모두 안아줄 수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참 따뜻하다. 따뜻한 거 맞지? 방귀도, 코파기도, 떡진 머리도 모두 봐줄 수 있는 따뜻한 가족.



엄마 : 복실아 너 음식이 떨어져서 옷에 묻었을 때 학원 안 간다고 못 간다고 할 정도로 창피하다고 했었잖아. 이제는 안 그래?

복실 : 지금은 안 창피해. 예전에 어릴 땐 내가 공주병이었나 봐.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창피한 것이 안 창피한 것이 되기도 한다. 작은 아이의 생각도 금세 변하기 마련이니까.


달복 : 창 피한 적 없지 않아?

엄마 : 나는 창 피한 적 없지.

복실 : 오빠! 창을 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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