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지네가 삽니다

<거실에 살다> 중

by 눈항아리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하는 일,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립니다. 복실이가 뭐라 뭐라 합니다. 청소기 소리 때문에 안 들립니다. 벌레가 어쩌고 어둠이 어쩌고 합니다.

첫 번째 타자로 씻고 나오는 달복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쫄아 있습니다. 욕실 문을 열면서부터 얼른 와달랍니다. 벌레인지 아닌지 봐달랍니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있습니다. 저는 엄마니까 용감하게! 파리채를 가지고 와 퍽! 때렸습니다. 그 거미가 아니랍니다. 바닥에 더 큰 것이 있답니다. 파리채로 세차게 내리쳤습니다. 볼록하고 단단한 수수쌀 한 톨입니다. 붉은색, 볼록한 등딱지가 딱 벌레 같아 보입니다.

머리도 못 말리고 소파에 앉은 아이는 화장실에서 만난 지네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빠랑 집에 먼저 들어온 아이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팔뚝만 한 지네를 발견하고서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을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소파에 앉아 자신이 본 지네와 같은 비슷한 지네를 찾기 위해 핸드폰을 계속 뒤적이고 있습니다. 인터넷 속에는 진짜 집에서, 밭에서 발견한 것 같은 지네는 안 나옵니다. 어디서 그런 멀쩡한, 사실감 가득한, 징그러운 사진들이 생성되는지 알 수 없지만 엄청 무서운 지네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보면 공포심만 더 커지는 걸 저는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달복이는 처음 팔뚝만 한(?) 지네와 대면한지라 무서우면서도 지네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어릴 적 저도 그랬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전설의 고향을 볼 때 귀신이 나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래도 빼꼼 눈을 열고 살짝 귀신 나오는 장면을 보곤 했지요. 그때 뛰어다니던 다리 없는 귀신이 뛰어다니던 장면은 제 기억에 평생토록 남았습니다. 귀신도 정말 무섭습니다.

청소기를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이 알아서 피신했습니다. 벌써 공중부양 중이었습니다. 책상에 습관적으로 앉은 것은 맞지만 움직일 줄 모릅니다. 책상을 보고 앉은 것이 아니라 뒤돌아 있습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말로 집안을 정리합니다. 저의 주특기입니다.

복동아 게임 가방 좀 치워줘. 게임 가방은 거실 바닥에 있습니다. 복동이 방 앞입니다. 자신의 책상에 앉은 복동이가 제일 가깝게 있습니다. 안방 문 앞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장실 앞입니다. 지네가 기어디니다 가방으로 쏙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해보며 저는 앉아서 복동이에게 부탁했습니다. 복동이는 절대 게임 가방을 건들지 않고 달복이에게 갑니다. 달복이가 들고 다니는 게임 가방입니다. 동생에게 치우라고 합니다. 달복이도 저와 같은 무서운 상상을 했는지 절대 안 갑니다. 복동이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간지럽히기 신공입니다. 달복이가 가방에서 지네를 만나기 전에 간지러워 쓰러집니다. 결국 들어온 남편에게 게임 가방을 좀 건드려 보라고 했고 남편은 시큰둥합니다. 달복이가 슬쩍 건드려보고 옆에서 복실이가 꺅! 비명을 지릅니다. 거미가 있답니다. 남편이 작은 거미 한 마리를 잡고 나서야 게임 가방은 정리가 되었습니다. 달복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게임 가방을 들고 날랐습니다.

그래도 전 아직 책상에서 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자꾸 목소리만 커지고 있었습니다. 공포가 조장하는 심리상태는 더욱 큰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남편이 화장실 천장을 실리콘으로 막겠다고 했습니다. 벽 틈새로 지네가 나온다고 합니다. 있는 쫄대는 왜 안 막고 있는 것인지 쫄대도 막고 실리콘도 쏴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 불러 화장실 문을 꼭 닫고 나오기로 확답을 받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지네가 삽니다. 청소기를 아무리 돌려도 나올 지네는 나옵니다. 다행히 정말 팔뚝만 한 지네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뱀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달복이가 팔뚝만 하다고 해서 정말 뱀이 아니냐고 몇 번을 물었습니다. 산속의 집이라 뱀이 나와도 절대 이상하지 않습니다. 벌레가 나온 날이면 온몸이 굳어 있는 것 같습니다. 몽롱한 기분으로 하루 시작합니다. 벌레가 나오는 날이면 이렇게 할 말도 많아집니다. 저의 공포증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책상에 앉아 공중부양술을 쓰고 있습니다. 기어 다니는 지네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명당자리입니다. 의자 다리나 책상다리를 붙잡고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시간차로 도망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피난처이지요. 지네가 저를 잡으러 의자 다리를 올라올 것이 아닌데도 저는 그런 쫓기는 상상을 합니다. 상상 속 저는 보통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를 못하지요.

밥을 해야 하는데 몸이 굳어서 거실 바닥을 발로 밟지 못하겠습니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책상만 밝을 뿐입니다. 오늘은 날이 흐려 아직까지 방바닥에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어두운 바닥에서 벌레가 나옵니다. 냉장고 아래, 싱크대 아래, 수납장 아래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밥이 없는데 용기를 내봅니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고 불을 환하게 켭니다. 쌀은 욕실 문 앞 김치냉장고에 있습니다. 저벅저벅 용감하게 걸어가 보겠습니다. 거실 바닥에 있는 걸레 하나는 뭐죠. 그냥 안 치우고 통과합니다. 한참 밝은 빛을 쏘인 후 치워보겠습니다. 쌀을 가지러 갑니다.

우리는 몇 번의 지네 비상상황을 직면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훨씬 공포가 덜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목격했던 장면들이 되살아납니다. 후유증이 며칠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됩니다. 괜찮습니다.

문제는 난생 처음 팔뚝만 한 지네와 직면한 달복이입니다. 많이 놀라고 무서웠을 텐데 아이를 좀 다독여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늦게서야 듭니다. 엄마가 소리나 지르고, 거실 바닥에 있는 가방이 무서워서 아이들에게 치우라고 했습니다. 반성합니다. 다음번에는 어른의 처신을 제대로 하길 바랍니다. 벌레에 관해서는 늘 한발 물러서서, 한 발이 아닌 두 발 뒤로 도망가서 생각하니 문제입니다. 다음번에 지네를 발견한다면 어른답게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안전하게 대피하겠습니다. 놀란 아이도 잊지 않고 꼭 안아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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