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방인가? 아니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바닥이었다. 저벅저벅 맨발로는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새롭다.
발바닥에 닿는 차가움. 뜨거운 태양과 맞설 수도 있을 것 같은 냉정함. 책상 아래 구석에 버려진 남편의 새 신을 찾아 신었다. 칼발이라고 한 치수 작은 걸 샀으나 작아도 너무 작아 발가락이 끼어서 못 신고 놔둔 신발이었다. 나 신으라고 남편이 못 신고 놔둔 신발이 분명하다. 20밀리미터 크지만 발 볼은 딱 맞는 신발, 끈을 꽉 조였다. 저벅저벅 황톳빛 새 운동화를 신고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주방으로 간다. 분홍 빛 장갑을 끼었다. 물 흡수가 전혀 되지 않는 방수 장갑이다. 고무장갑! 팔뚝까지 알차게 올려 끼고 걸레를 들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두 개를 들었다. 무릎을 꿇었다. 비굴한가? 전혀. 내가 감당해야 할 아침이다.
바닥에는 끈적함이 한가득이다. 더위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린다던데 실내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아니다. 더 큰 거, 더더더 큰 거. 시럽병을 널쪘다.
널쭈다 : ‘떨어뜨리다’의 경남 방언 // 당황하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나는 경상도 사람이 아니지만 때로 사용하는 말에 경상도 사투리가 포함된 경우가 있다. ‘떨어뜨렸다’를 표준어올 쓰면 애타는 심정이 표현이 덜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릎이 아플 때 ‘무릎이 아파 ‘가 아니라 강원도 사람인 나는 ’ 고뱅이가 마이 아파 ‘라고 해야 정말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과 같다. 아이고 고뱅이야.
1000밀리리터 유리병은 밑동의 3분의 1이 유리 조각이 되어 박살이 났다. 다행히 끔찍하게 끈적하고 늘어지는 점성의 시럽 덕분에 어디로 튀지 않고 바닥에 촤르르 가라앉아 있었다. 뜨겁고 벌건 용암이 흘러가듯 천천히 바닥으로 퍼지는 1000밀리리터의 시럽을 가만 구경하고 섰다. 일순간 정지. 사태 파악은 3초면 된다. 사태 수습은 순식간에 시작된다. 주변에 있던 긴 수건, 두 개를 퍼지는 시럽 쪽으로 재빨리 던졌다. 급한 불은 껐다. 시럽 병 위쪽 3분의 2는 멀쩡했다. 어제 딴 새 병이라 튼튼해서 그런가? 하하. 멀쩡하면 뭣 하는가. 아래쪽이 다 깨져 남아있는 시럽은 없다. 병은 깨지면 쓸 수 없다. 바닥에 흐르는 시럽을 쓸어 담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 속 쓰리다.
지금부터 인고의 시간이다. 깨진 유리 중 커다란 윗부분을 먼저 사건 현장에서 멀리 치웠다. 손이라도 베면 큰일이다. 나는 사고는 잘 치지만 다치지 않기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유리를 깼지만 딱 한 번만 크게 다쳤다. 손에 투명 유리컵을 든 채로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였다. 그건 20대의 일이었고 지금은 40대라 그런 엉뚱한 사고는 치지 않는다. 그 후로도 많은 사건 현장 수습의 경험으로 갈고닦은 실력은 내 안의 노하우가 되어 전문가 수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네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단련이 되었다. 나의 모습을 보듯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다 보면 유리컵이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떨어질 것인지, 포크와 숟가락은 어느 위치에서 떨어질지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우하하.
그러나 이제부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의 실수를 만회하는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두 개의 버려질 행주에 시럽을 닦는다. 닦고 싶으나 양이 많아 닦아지지 않는다. 시럽을 묻힌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흐르는 물 바닥에서 행주에 엉겨 붙은 시럽을 씻어낸다. 빨아낸다. 물을 짜내고 다시 바닥에 꿇어앉는다. 시럽을 묻히고 다시 일어나 흐르는 수돗물에 흘려보낸다. 내 시럽! 아직 마수도 못했는데!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작은 행주로 닦고 씻고를 여러 번 반복하니 마른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리조각과 거대한 시럽의 무덤을 덮어 놓았던 긴 수건을 하나씩 뭉쳐 비닐에 담았다. 뚝뚝 떨어지는 시럽 사이로 투명 유리 조각이 반짝인다. 아! 내 반짝이는 시럽의 조각이여!
시럽을 다 닦은 후에는 마른 휴지로 닦았다. 퐁퐁으로 문지르고 마른 것, 젖은 것, 마른 것, 젖은 것을 번갈아가며 닦았다. 끈적임 없이 반질반질하다.
시럽이 묻은 신발은 괜찮다. 고무신발이다. 마당에 가지고 나가 박박 문질러 씻어 햇볕에 뉘어 놓았다.
출근 후 40분이 지나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 멀지 않았다. 괜찮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다행이다.
바닥에 흐른 시럽의 흔적은 사라졌다. 감쪽같다. 남편은... 모를 수가 없다. 시럽이 없으면 바로 알아챈다. 미리 이실직고하였고, 남편이 시럽을 시켰다.
마음의 동요가 없는 고요함. 나는 여분 없는 시럽 한 병을 깨 먹고도 천연덕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