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달렸다!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이야기 <고추테리어>

by 눈항아리

고추 열매가 달렸다. 언제 달렸는지 모른다. 매일 사진을 찍어주지만 총채벌레를 찾을 때처럼 잎을 꼼꼼히 들춰 보기는 좀처럼 힘들다. 꽃이 말라 떨어지는 모양이 이상해서 다가갔다. 무슨 꽃병인가. 하얀 별에 푸른 하늘색을 은은하게 담았던 화려한 꽃이 시들어 호리병처럼 길쭉하게 말라 있었다. 후드득 떨어지지도 못하고 간신히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진찰을 하듯 고춧잎을 만져보고 꽃잎을 들어 올려 안쪽을 살펴보고 가지를 이리저리 들춰 보았다. 


발견했다 드디어! 고추에 열매가 열렸다. 고추 꽃을 채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꼬리에 매달고 하늘로 고추 꼬리를 높이 쳐든 모습, 그 기상이 남다르다. 고추는 보통 꼭지는 위에 꼬리는 아래쪽으로 향하고 달리는데... 꽃은 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특별한 녀석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 어디 아픈가? 성공적인 열매를 달았다는 기쁨의 표시인가? 왕관?


이리저리 들춰보다 보니 또 발견한 것이 있다. 이 녀석 다분지다. 보통 고추는 2개의 가지로 나뉘어 가지가 벌어지는데 우리 고추는 3개의 가지로 나뉘었다. 다분지는 열매를 많이 수확할 수 있다는데 이 녀석 이제부터 엄청난 고추를 달 것인가 기대가 된다. 주렁주렁 열려라. 하하. 열매가 안 달릴 때는 노상 걱정에 광합성할 이파리라도 많이 달리고 건강하라고 했는데 열매가 달리니 더욱 많은 열매를 원하게 된다. 욕심이란 그런 것이다. 바라고 바라는 마음. 바라지 말고 바라보기만 하면 더 좋을까. 고추를 하나 따서 바로 쫑쫑쫑 썰어 보글보글 된장국 마무리에 솔솔 뿌려주면 칼칼한 맛이 최고다. 그 재미를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달렸으나 바로 슬픔에 휩싸인 고추 열매의 비애! 


“복실아 엄마 고추나무에 고추 달렸다. 그것도 두 개나! 빨리 키워서 반찬에 넣어 먹자. 된장국에 넣어 먹을까?”

“엄마 고추는 너무 매워.”


맞다, 우리 복실이는 아직 고추를 못 먹는다. 그래도 작게 다져 음식 이곳저곳에 숨겨서 넣으면 저도 모르게 잘 먹는다. 하하.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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