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수박 그 양가감정

by 눈항아리

수박은 크다. 껍질은 두껍다. 씨는 많다. 버리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수박 안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썰어야 한다. 남편이 썰면 안 되는가? 썰어도 된다. 남편은 썰기만 한다. 뒷정리가 안 된다. 싱크대에서 수박 잔치를 벌인다. 오래도록. 밤새도록. 국물을 줄줄 흘리도록 아이들에게 썰어준다.


수박을 잘랐다. 여름이면 돌아오는 수박 칼질. 그건 마음먹기에 따라 흥겹기도 하나 대부분 애증의 칼질로 돌변한다. 아 수박이여! 이번에 많이 크다. 크면 껍질도 많다. 그래서 준비한 수박 전용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무려 5리터다. 수박 9킬로그램을 사서 반을 썰면 수박 껍질로 5리터 봉투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좀 작은 것으로 사 오시오. 통에 안 들어가오. ”

“작은 건 26000원 큰 건 29000원. 3000원 차이인데 작은 걸로 사 올까? ”

“아니오 큰 것이 좋소. ”


남편의 말발은 못 따라간다. 아내를 이기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굴리는지 모른다. 잔머리. 그것에 특화된 그 남자의 설득력에 말려 수박을 잘랐다.


벌겋다. 원래 벌겋지. 아니 더 벌겋다. 흐물흐물 투명으로 벌겋다. 화상을 입었다. 열이 과해서 그렇다. 맛을 본다. 웩! 못 먹을 맛이다. 교환했다. 동네 마트에서 수박 교환이란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다. 아는 사람 천지다. 그러나 할 말은 하고 사는 남편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가서 새것으로 교환해 왔다. 반으로 자른 수박 하나, 4분의 1로 자른 수박 하나, 세로로 자른 수박 여러 개를 모두 싸들고 다시 마트로 갔다. 수박 키우는 주말 농부이니 쓱 보고 그나마 싱싱한 것으로 잘 골랐을까. 그럼 첫 번 고를 때 좀 잘 골라 올 것이지. 그래도 두 번째는 그나마 좀 나았다. 다시 자른다. 큰 칼로 반을 자르고 또 반을 자르고, 작은 칼로 자르고 뾰족 칼날로 씨를 뺀다.


남은 수박의 보관이 문제다. 맞는 수박통이 있다면 보관하면 된다. 국물이 빠지는 망 하나와 락앤락처럼 고무패킹이 있는 손잡이 뚜껑과 둥근 몸체로 이루어져 있다. 수박 크기에 맞게 큰 통, 작은 통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통이 어디 갔는지 쯧, 몸체는 집 창고에, 뚜껑은 분실, 망은 가게에 있다. 수박 하나를 사려면 냉장고 수납부터 신경 써야 한다. 통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 통마저 없다면 난감하다. 난감하다고 버릴 것인가.


그럼 랩을 씌워볼까? 둥근 볼에 수박 반통을 넣고 랩을 씌운다. 둥근 볼에 수박 4분의 1통을 넣고 랩을 씌운다. 나머지 4분의 1통은 썰어서 보관한다. 랩에 닿는 부분은 세균이 번식한다고 잘라내고 먹으란다. 다음번 자를 때 단면을 1센티미터씩 잘라낸다. 그러니까 왜 큰걸 사 와서 버리고 일을 만들고 그러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자르고 나면 버리는 게 일이다. 수박 껍질이 너무 많다. 깍둑 깍둑 산을 쌓았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수박화채가 나왔는데 사이다 맛이 안 나는 화채였어요.”


“엄마도 신기한 화채를 보여주마.”


‘수박 껍질 썰다 화가 나 쌓아 본 수박 화(火) 채란다. 화르륵 수박의 붉은 빛깔이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니? 왜 다들 여름에 수박을 못 먹어 안달이냐고.’


남편 님 이번에는 대형 마트에 가서 수박을 사 왔다. 수박 표면에 11이라고 커다란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설마설마 11킬로그램은 아니겠지? 다행히 11킬로그램이 아닌 11 브릭스다. 반을 잘랐다. 깍두기로 4분의 1을 썰어 담았다. 맛을 보니 덜 익었다. 수박 맛이 내 마음 같이 씁쓸하다. 들큼한 풋풋함이 혀 끝에서 느껴진다. 뒤끝이 긴 수박이다. 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편 농부 씨. 수박 좀 잘 골라와요. 네?’



우리는 수박 농사 3년째. 수박의 속을 잘 모른다. 나는 전혀 모르고, 남편은 조금 아는 것 같지만 지난해까지도 멀쩡한 수박을 따오는 경우가 크게 없었다. 수박을 언제 따야 하는지 수박이 가르쳐 줄 것인가? 절대 나 몰라라 할 수박이 분명하다. 그래서 밭에서 키우는 수박은 수정된 날짜를 기록해 둔다. 큰 수박은 수정 후 40~45일 수확한다. 처음에는 그런 걸 잘 몰라서 하양을 닮은 핑크 수박을 얼마나 많이 잘라 버렸는지 모른다. 안다고 해도 8월의 뜨거운 태양을 쬔 수박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 속을 알 수 없으니 누구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다. 우리는 잘라보고 잘 익은 것만 먹는다. 하하.


수박은 크다. 껍질은 두껍다. 씨는 많다. 버리는 것도 일이다.

나는 작고 껍질은 먹고 씨도 먹고 버릴 것이 없는 과일이 좋다.


그래도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나도 좋다. 싫지만 좋아야 하는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박 화(火)채로 표현해 보았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수박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초록 풀의 싱싱함과 빛나는 시원함까지 한 그릇에 모두 담고 있다.


“엄마 수박 껍질 가지고 왜 장난치고 그래요. ”


아들 복동이가 현실을 깨우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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