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 화분 속 고추 이야기 <고추테리어>
기다랗게 쭉쭉 뻗은 고추가 두 개
구불구불 못생긴 고추가 두 개
잘 생긴 걸 두 개 따서
남편에게 주려고
복이에게 얼른 가서
고추 두 개만 따오라고 했다.
아이가 따온 고추는
못생긴 고추 두 개.
남편에게 고추를 주려니
쌈장이 필요한데, 쌈장아!
아무리 불러봐도 쌈장은 없고
고추장, 된장, 안 짠 된장만 있다.
쌈장을 두 개나 샀는데 어디에 있는 걸까.
쌈장이 없으면 고추를 못 먹는 남편인데
쌈장을 사 오랄까 말까...
‘복아!’ 하고 부르려고 했지만
날이 더우니 쌈장을 참았다.
고추는 살았다.
못생긴 고추 두 개는
점심을 지나 저녁 식탁에 오를 예정이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안고
못생긴 구불구불 고추는
싱크대 위에서 신세한탄 중이다.
쌈장을 사러 가야 하는데,
이제는 심부름해 줄 아들도 없는데,
해가 너무 뜨겁다.
아들은 이 더위를 뚫고 어디로 갔을까.
아들아 쌈장 좀 사다 주라.
왜 안 오냐.
고춧잎에 노랗고 검은 점이 생겼다.
세 장이나 뜯어서 갖다 버렸다.
또 아픈 건가.
남편에게 물으니 고추가 해를 잘 봐야 안 아프단다.
비 맞아 묵직한 부직포 화분을
질질 끌어 마당 중앙으로 옮겼다.
사람도 고추도 잘 먹어야 안 아프다.
고추야 해를 잘 먹어라.
그런데 또 너무 더워 걱정이다.
더위는 먹지 말고 해를 먹어라.
비가 많이 와도 걱정
바람이 쌩쌩 불어도 걱정
해가 뜨거워도 걱정
걱정 아닌 날이 없네.
고추야 고추야 아프지 말고
건강한 고추를 많이 생산해라.
우리 남편 고추에 쌈장 찍어 맛나게 먹게.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서
한 입에 아삭아삭 씹어 먹는 건
좀 아이러니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고추와 인간의 관계인 걸.
식집사 이래도 되는 걸까.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