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 화분에서 키우는 고추 한 그루 이야기<고추테리어>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고추의 친구 바질 화분 두 개는 종일 에어컨이 나오는 방으로 피신시켰다. 작은 바질들은 집과 가게 화단 곳곳에 심었다. 이 더위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작은 화분보다 땅이 더위에 더 적합할 것인가. 그건 모를 일이다. 화단의 마른땅을 호미로 파며 아프리카의 건조한 땅에 왜 작물이 잘 안 자라는지 이해했다. 허연 흙이 먼지처럼 소복이 바닥에 쌓여있는 것 같았다. 무화과 삽목 화분은 집으로 옮겼다. 시골집은 가게보다 시원하다.
고추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 더위에 마당에 혼자 둬도 될까? 냉정한 주인은 그늘을 찾아 이제는 바퀴를 밀어주지도 않는다. 덩치가 큰 녀석이라 실내로 옮길 수도 없다. 저녁으로 물이 마르지 않나 확인하고 물 샤워나 시켜줄 뿐이다. 태양 아래에서 홀로 견디는 시간이다. 고추는 낮이면 풀이 팍 죽어 쪼그라들고 시들시들해졌다 해가 저물어가며 생기를 되찾는다. 밤에 물을 먹고 생글거리다 낮이 되면 또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추가 보이는 대로 다 따먹고 이제 하나의 열매를 달았다. 병들던 잎들은 대충 떼버렸다. 약은 안 쳤다. 더위에 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 뭣인지도 다 살균이 된 건 아닐까. 잎이 깨끗해졌다. 태양의 열기가 무서워 병이 도망갔나 보다 했다. 고추 꽃은 핀다. 그리고 말라버린다. 찌그러진다. 쪼글쪼글 갈색이다. 더위에 피었다 열매를 맺지 못한 꽃들은 안타깝다.
꽃이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은 하나 빼고 모두. 그건 꽃이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다. 약해서가 아니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열매가 맺힐 환경이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환경 탓을 해야지. 그런 날은 날씨를 그저 탓하는 수밖에. 날씨는 도대체 왜! 우리가 쓴 화석 연료 때문에... 고추야 미안하다. 나 때문에, 내가 더운데 찬 바람을 너무 쐬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고추는 계속 꽃을 피운다. 탓만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꽃을 피운다. 그런데 고추는 왜 열매를 맺으려고 기를 쓰는 걸까. 내가 다 따먹는데. 고추는 그건 모르는가 보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 미래를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간다.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는지 열매를 맺어 무얼 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참 우스운 일이다. 그러니 아등바등 살 것이 아니라 즐기자. 고추는 뭔가를 아는 게 분명하다.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축 늘어진 잎을 한들한들 흔들고 있었다. 더워 죽겠다면서 웬 춤이냐.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
‘고추테리어’는 고추와 인테리어의 조합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