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에게 감사를

by 눈항아리

너무 덥습니다. 바깥은 36.2도, 실내는 28도. 에어컨이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데도 건물 온도가 안 떨어집니다.


여기서 에어컨이 고장 나 멈춘다면 우리 바깥문에 ‘에어컨 고장’이라 써붙이고 쉽시다.

이 날씨에 에어컨 고장이라고 쉰다는데 누가 뭐랄 사람이 없을 겁니다.

(동네 커피숍은 막 쉬면 어르신들한테 야단맞습니다.)


제빙기 얼음이 바닥입니다.

제빙기 얼음이 다 떨어지면 ‘재고 소진, SOLD OUT’이라 붙이고 우리도 한번 쉬어 봅시다. ”

얼음도 재료 중 하나 아닐까요? 소원입니다!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남향 창문의 커튼을 내렸습니다. 어두컴컴하니 분위기가 납니다. 분위기는 무슨 요, 건물 안에서도 어떻게든 더위를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안에서만 살 수가 있나요. 아이들은 방학에도 학원 수업을 가야 합니다. 바쁜 시간을 피해 데려다줘야 합니다. 날이 멀쩡하면 걸어가라고 하겠지만 살인적인 폭염에 아이들만 보낼 수 없습니다.


아이들 학원까지는 10분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차 앞이 모두 막혔습니다. 태워다 줄 수 없습니다. 엄청난 날씨 때문에 이중 주차한 우리 고객님의 차를 빼달라고 하기가 미안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부터 숨이 턱 하니 막힙니다. 날이 너무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로 내몰아야 합니다. ‘달복아 복실아 미안하다. ’ 얼음물 하나씩 손에 들리고 빨대를 입에 물렸습니다. 저는 대형 우산을 하나 들었습니다. 겉은 깜장, 안쪽은 파랑입니다. “얘들아 붙어. 우산 그늘로 들어와.”셋이서 우산을 쓰고 걸어갑니다.


복실이가 묻습니다. “엄마 이거 우산 아니야?” 지난번에도 해 쨍쨍한 날 왜 우산을 쓰냐면서 막 접으라고 그러더니, 비 오는 날도 아닌데 대형 우산을 든 엄마가 창피한가 봅니다. 그늘을 만들어주려고 폈는데 양산 말고 우산 쓰면 안 되는 거였을까요? 하긴 지나가는 사람들 중 우리처럼 대형 우산을 쓰고 옹기종기 걸어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졸지에 창피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생각해 보니 억울합니다. 우산이 햇빛을 얼마나 잘 막아주는데! 검정 우산의 햇빛차단 효과는 무려 85퍼센트가 넘어간다고 합니다. 자외선 차단효과 99퍼센트, 100 퍼센트를 자랑하는 멋진 양산은 아니지만 양산이 없다면 우산이라도 집어 써야 하는 무지막지한 날씨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우산 겸용 양산도 많습니다. 복실이가 돌아오면 꼭 말해줘야겠습니다. ‘우산은 해가 뜨거울 때도 쓴단다. 하하. ’


복실이와 달복이의 학원이 끝나갑니다. 또 나가려니 겁이 납니다.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덥고 땀이 줄줄 흐릅니다. 복실이는 다음 학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량이 되는 학원이 고맙습니다.


달복이를 데리러 가야 합니다. 어쩐다...

“달복아 엄마가 카톡으로 선물 보냈다! 얼음컵이랑 아이스티랑 보냈어. 얼음컵에 음료수 부어서 시원하게 먹으면서 걸어와! ”

“엄마 고맙습니다!”

달복이는 신이 나서 학교 앞에 새로 생긴 편의점에 들르겠지요? 얼음컵을 들고 룰루랄라 걸어올 겁니다. 건물 안에서 시원하게 에어컨과 선풍기를 쐬며 기다렸습니다. 과연 달복이는 어떻게 왔을까요? 귀찮아서 바빠서 편의점을 지나쳤습니다. 맨몸으로 태양 아래에서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다행히 태양빛에 녹아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얼굴과 팔이 뜨끈뜨끈합니다. 핫팩을 쥔 것 같습니다. 괜히 제 몸 사리다 아이가 녹아내릴 뻔한 것은 아닌지 미안해집니다.

“엄마 놀아도 돼요?”

5 학년씩이나 된 녀석이 왜 노는 걸 묻느냐고요. 오자마자 게임을 해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는 겁니다. 여름 햇살에 10분 동안 따뜻하게 잘 익은 달복이 녀석은 물 한 모금 먹을 생각을 않고 게임기를 들고 신나 합니다. 날 더울 때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나오는 실내에서 가만 앉아 노는 게 최고입니다.


오후 3시쯤 서향으로 햇볕이 들어오는 방 하나는 30도를 기록했습니다. 실내온도입니다. 에어컨은 빵빵했습니다. 시원한 바람은 계속 나오지만 온도는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입니다. 방은 시원한데 에어컨 온도 센서가 망가진 건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에어컨이 멈추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어지더니 실내 온도는 27.9도로 내려갔습니다. 9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 바깥 온도는 31.9도, 실내는 27.6도입니다. 오늘도 열대야 확정입니다.


실내에서 일하는 걸 감사히 여기며 오늘도 마감 시간까지 잘 돌아가준 냉장고와 제빙기, 에어컨에게 감사합니다. 전력 소비량이 많아 언제든 일시에 모든 냉방기기들이 훅 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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