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 밥솥의 추는 작은 구멍을 막았다 열었다 한다.
돌돌돌 돌고 들썩거리며 칙칙칙 소리를 낸다.
수증기를 가두고 빼고, 압력을 가두었다 빼준다.
추는 돌아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압력밥솥 추가 돌지 않았다.
구멍을 막은 후 제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수증기는 추를 밀고 나오지 못하고 뚜껑의 어느 틈새를 찾아 마구 밀려 나온다.
푸우우우 쉬이 이이이
그러던 밥솥이 어느 날부터 긴소리의 고음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밥솥이 터질까 무서워 추를 슬쩍 들어 올려주었다.
맨손으로 하면 안 되고 도구를 사용해야 했다.
압력을 빼주면 좀 잠잠해졌다.
그것도 잠시, 좀 있다 보면 또! 볼이 터질 것 같이 울그락불그락 소리를 내다 김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참지 못하는 순간 다시 ‘삐익!’ 소리를 낸다.
반복되는 밥솥의 반항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기다란 어묵 끼우는 꼬치를 책상에 하나 가져다 놓았다.
3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길이.
나무 꼬치를 책상 한쪽 귀퉁이에 놓고 있다 괴상한 소리가 나면 꼬치를 든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우아하게 손가락 까딱 하나만으로 추를 살짝 들어 올려 증기를 빼준다.
절대 놀라지 않고 안정적인 자세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렇게 틈틈이 밥솥의 증기를 빼주면서 34분 동안 백미밥을 만들었다.
지극정성은 안 되어도 아궁이 옆에서 불을 지키며 밥을 지었을 옛날 어르신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 까딱 쯤이야 어묵 꼬치가 있어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다만 밥이 맛이 없을 뿐이었다.
수증기와 압력이 다 빠져버린 밥이 괜찮을 리가 없었다.
푸슬푸슬, 고슬고슬하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없는 사태.
그나마 볶음밥을 하면 낫겠다 싶어 하루는 계란 볶음밥을 하고 하루는 김치볶음밥을 했다.
숟가락에서 부스러지며 모래처럼 흩어지는 밥을 그냥 퍼먹기도 했다.
묵묵히 밥을 떠먹어준 아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비몽사몽 아침이라 밥 상태가 어떤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남편이 밥솥의 상태를 알아챘다.
밥솥 때문이 아니라 밥솥의 고음에 놀란 내가 “꺅!”하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잠자던 복실이도 하루는 거실로 튀어나왔다.
며칠 벼르고 벼르던 남편이 오늘 아침에 밥솥을 분해했다.
밥솥 뚜껑이 분해된 걸 처음 봤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뾰족한 기구로 구멍을 후벼주고 뚫어주었다.
혹시나 솔벨브가 고장 났다면 7만 원은 줘야 한다고 하고, 센서 고장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밥솥 뚜껑을 계속 주먹으로 탕탕 때렸다.
우여곡절 끝에 밥솥은 환골탈태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1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제자리로 돌아온 것에 박수를 보냈다.
자동세척을 한 번 하며 추가 열리는지 돌아가는지 살펴보았다.
맥가이버 남편의 솜씨가 최고다!
추가 돌아간다.
압력을 가두고 압력을 빼는 완벽한 시스템으로 돌아왔다.
수증기가 추의 작은 원형 공간으로 모여들어 높은 증기 구름을 만들며 직선으로 힘차게 솟구친다..
큰 아이 둘은 학교로 출발했지만 아직 밥은 못했다.
냉동밥을 하나 데워 나눠먹었다.
꼬마들은 밥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계란과 감자를 삶았다.
압력밥솥이 고쳐졌는데 밥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
씻어놓은 쌀이 퉁퉁 불어 가고 있다.
가끔 삐거덕 거리는 일상.
가끔은 삐거덕 거리며 되돌리는 일상.
일상이 지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