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이라는 바다에서 발장구 치다

by 눈항아리

물을 무서워한다. 물만 무서워할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다 무서워한다. 물불만 무서워할까. 어둠도 무섭고 천둥도 무섭다. 천지자연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사는 동물도 무섭다. 네 발 달린 짐승, 날개 달린 새, 다 무섭다. 고양이 집사가 천지인 세상인데 나는 살면서 고양이 한 번 만져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엔 개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무서워졌다. 들개, 떠돌이 개는 정말 무섭다. 새는 날아다니니 크게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까마귀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면 그 거대한 크기에 주눅이 든다. 착지하는 두 발은 얼마나 크고 날카로운지 모른다.


동물 중 단연 으뜸, 내가 극도로 무서워하는 건 벌레다. 다리 많은 벌레, 다리 없는 벌레, 나는 곤충, 안 나는 곤충을 가리지 않는다. 매미는 너무 커서 무섭고, 나비는 예쁘지만 무섭고, 잠자리는 눈이 너무 무섭다. 무당벌레는 등딱지가 날개로 변해서 무섭고, 등 푸른 풍뎅이들 등이 딱딱해서 무섭다. 사마귀는 크기도 크지만 칼날 같은 거대한 앞다리가 무섭다. 벌은 독침을 맞아봐서 무섭다. 그리마는 다리가 많아 무섭고, 개미는 너무 많아서 무섭고, 지네는 안 무서울 수 없다. 물리면 독에 당해 당장 죽을 것 같다.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꼽등이, 귀뚜라미는 긴 다리로 뛰어다녀서 무섭다.


벌레를 안 보고 살면 좋을 텐데, 시골로 이사 와서 안 마주칠 수 없게 되었다.






무서움은 마주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가끔 밖으로 나갈 때는 온몸을 감싸고 얼굴만, 때로는 눈만 빼꼼 내놓고 나간다. 그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무서움을 향해 한 발씩 내딛고 있었다.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익숙해진다. 차츰 적응하면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세상에는 무서운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바다에 갔다. 바다 입수는 5~6년 만이다. 밭에 나갈 때 모자, 장화, 장갑, 마스크, 수건으로 무장을 하는 것처럼, 바다에 들어가면서도 준비를 철저히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생명줄까지 단단히 맸다. 보트같이 큰 튜브를 몸에 끼우고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햇볕에 타버릴까 봐 창 넓은 모자로 썼다. 해변에서도 역시나 존재감이 돋보인다. 그러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물이라는 당면한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 속에 뭐가 있을까. 해파리에 쏘여 응급실을 찾는 사람도 있던데, 얕은 바다에도 상어가 나타난다고 하던데. 얼마나 깊이 들어갈 작정인지 몰라도 상어 걱정이 웬 말인가! 그러나 공포는 세상의 무서운 것들을 모두 몰아 바다에 쏟아 놓았다.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것, 빠져 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나를 바다로 밀어 넣었다.


두려움 속으로 첨벙거리며 들어갔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온다. 계속 밀려와 나를 모래로 다시 밀어낸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인가? 무릎까지 오는 물속에 주저앉았다. 튜브가 뜬다. 발로 살금살금 조금만 더 들어갔다. 발 밑이 훅 꺼진다. 비탈이다. 튜브가 없었더라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을 게 분명하다. 튜브를 타고 다리를 자연스럽게 펼 수 있는 깊이까지 들어갔다.


‘여기가 좋겠네. 이쯤이면 되겠어.’


아이들은 저만치 바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튜브는 벗어던지고 놀고 있다. 큰 아이는 구명조끼까지 벗어던지고 놀고 있다. 날 보고 자꾸 더 더 깊이 들어오란다. 같이 놀자고 한다.


‘재밌게 놀고 있어. 엄마는 너희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망을 봐줄게. ’


나는 무섭지만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엄마다. 상어가 나타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물의 깊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해안선을 타고 왔다 갔다 홀로 바다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같이 놀자고 자꾸 아이들이 다가와 튜브를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면 해변으로 도망갔다.


한 번은 남편이 나를 깊은 물속으로 끌고 갔다. 꽥꽥 거리며 소리를 쳤다. 보이지 않는 깊은 물이 나를 끌어당길 것 같았다. 옆에 든든한 남편이 있지만 순간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사라졌다. 해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존재도 이미 없었다. 깊은 바닷물과 나만이 대면한 상황, 얕은 곳으로 가기 위한 필사의 외침이 시작되었다. 같이 놀자고 아이들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던 남편이 놀라 손 힘을 풀었다. 해수욕장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고 한다. 인명 구조요원까지 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창피했겠지. 내가 죽을 것처럼 소리를 쳐서.


나는 정말 죽을 것 같이 무서웠는데.



더 얕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주시했다. 튜브에 기대어 하늘을 보고 누웠다. 구름도 좋고 파도도 잔잔하다. 다시 엎드려 다리를 쭉 펴고 물장구를 친다. 개구리 다리처럼 물살을 가르며 해안선을 따라 수영을 한다. 때때로 파도가 나를 밀어내 물 밖에 배처럼 정박하기도 한다. 그것도 좋다. 저쪽 옆에 노부부는 파도를 맞으며 해변에 앉아있다. 나름의 방법으로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다. 꼭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


투명한 물속으로 빛의 물결이 그물을 만들며 넘실거린다.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물고기가 지나간다. 모래보다 약간 짙은 색이라 물결을 만들지 않고 가만히 서서 물고기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 금방 눈에서 사라져 버리는 물고기가 아쉽기만 하다. 저 깊은 물에는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살까.


먼바다를 응시하는데 거대한 검은 물체가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들 쪽으로 온다. 구름 그림자인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바다를 보고 검은 물체를 따라 눈을 굴렸다. 상어! 고래?


“어어어!”


손으로 검은 물체를 가리키며, 해변으로 뛰쳐나갔다.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뒤로 물러서고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그것을 따라 달렸다. 따라가니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나에게로 온다! 온다! 검은 물고기 수천 마리가 내 발 바로 앞으로 휙휙휙 지나갔다. 스노스쿨링을 하던 부부가 비명을 지르며 물에서 솟아올랐다.


“달복아! 물고기! ”


물고기 떼가 아이들 있는 쪽으로 갔다. 물고기가 달복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달복이는 거대한 물고기 떼를 보지 못했다. 복실이는 내가 물고기를 봤다니, 그때부터 물고기를 찾겠다고 내 옆에 붙어 다녔다. 아이가 자꾸 물결을 일으켜서 물속이 안 보였다. 그래도 물속 탐색전은 계속되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를 타고, 물속 포복자세로 해안선을 따라 샅샅이 훑고 다녔다.


바다는 신비한 곳이다. 그리고 무서운 곳이다. 그렇게 즐길 수도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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