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 화분 속 고추 이야기<고추테리어>
고추를 도둑맞고, 우리 부부는 고추 화분을 더욱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도둑이 고추를 다 따갔지만, 작은 열매가 커지는 건 금방이었다.
길쭉해지는 고추 하나를 점찍어 놓고, 남편은 얼른 키워 쌈장에 찍어먹어야지 했단다.
그런 마음을 먹은 다음 날 고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보, 자기가 고추 땄어?”
“아니, 또 휑해 보이지? 누가 또 따갔나 봐.”
우리 부부 말고, 고추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남편은 CCTV를 운운했다. 열린 문에 문을 해 달아야겠다고도 했다.
이제는 고추를 먹으려면 도둑보다 먼저 발 빠르게, 아니 손 빠르게 고추를 수확해야 한다.
고추가 더 크기 전에 도둑보다 먼저, 내가 고추를 모조리 죄다 따버렸다.
“여보, 고추가 또 없어. 낮인데 또 누가 따갔지?”
“내가 다 따서, 고기 볶음이랑 계란말이에 넣었어요. 도둑보다 빠르게 신속하게 영리하게.”
남편은 생으로 아삭하게 먹는 고추를 좋아하는데... 아쉬움이 얼굴에 가득했다.
작은 고추 하나에 사람이 참 쩨쩨해진다.
나도 알고 보면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아닌데.
도둑까지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 수련을 해보자. 나는 바다와 같은 사람이니까. 겨울새를 위해 마른 가지에 감 몇 개는 남겨 놓는 조상의 지혜를 본받아 실천해 보자.
나도 도둑을 위해 고추 열매를 남겨 두었다.
지난 주말 도둑이 다녀갈 적에 도둑의 눈에 들지 못한 그 구부러진 고추,
또다시 다녀간 도둑 님에게 역시나 선택받지 못한 그 고추.
평일 동안 열심히 자랐지만 우리 부부 어느 누구의 마음도 빼앗지 못한 그 고추.
구부러졌으나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는 그 고추.
생존의 열쇠는 길고 잘생기고 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 고추.
그 고추를 도둑 님을 위한 제물로 바친다.
나는 마음이 넉넉하고 인심이 후한 사람이라서 생명력이 대단한 그 고추를 도둑 님을 위해 남기는 것이다.
일부러 남긴 것은 아니고, 다 땄다고 생각했는데 그 고추만 유독 내 손을 피해 갔다.
그 고추, 생존 본능이 뛰어난 것은 확실하다.
<고추테리어>는 부직포 화분에 키우는 고추 한 그루의 이야기입니다.
반려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 이야기입니다.
좁은 부직포 화분 속 작은 생명에게 삶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