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상 정치적인 성향을 이야기할 때 진보와 보수로 구분해서 말하곤 한다. 진보진영은 현실에 부정적이고 보수진영은 우호적이다. 그래서 진보는 변화를 추구하고 보수는 안정을 추구한다. 진보는 좌파로, 보수는 우파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사에 오랜 기간 우파의 입장에 있었던 현재의 야당은 지금의 상황들이 그들의 집권기에 있었던 결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직까지는 안정을 추구하는 우파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현재의 여당은 지금의 많은 제도들을 자신들의 정치 성향에 맞도록 바꾸기 위해 좌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진영은 상대가 내건 가치들을 서로 반박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당은 형평성의 가치를 위한 정부의 개입을 늘려야 한다고 하고 있고, 야당은 자율시장의 가치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야 간의 정치적인 쟁점 속에 담겨있는 가치들은 어느 하나 양보 없이 한쪽이 선택되면 한쪽은 선택할 수 없는 듯한 사항으로 다뤄진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치에 대한 쟁점들이 과연 어느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패배하는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 공격이 중요한가 수비가 중요한가에 대해 토론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기지 못하니 공격이 중요하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골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그보다 더 많이 실점하면 질 것이니 수비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참여자들이 공격과 수비의 가치가 각각 고정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 공격을 강화하면 수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수비를 강화하면 상대적으로 공격의 비중이 줄어들듯이 둘 고유의 가치도 배타적인 것으로 가정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도 이미 예상했다시피 공격과 수비는 둘 다 중요하다. 순간순간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해지는 잠시의 상황만 있는 것이다. 우리 편이 공을 가지고 있다면 공격이 더 중요해진다. 이때 우리 편이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공격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반면 상대편이 공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수비가 더 중요해진다. 우리 편이 지고 있거나 확실하게 이겼다고 단정하기 힘든 점수 차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가치판단의 상황을 수치로 표현해보면 전체를 100이라고 보았을 때 어떤 때는 60:40, 또 어떤 때는 40:60, 극한 상황에서는 전략적으로 100:0, 0:100 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논쟁을 할 때는 이런 현실 세계와는 달리 0과 1로 단순화가 되어 버린다. 어느 한쪽이 1이면 다른 한쪽은 0이다. 양쪽의 지지자들은 자신이 옹호하는 편이 0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1이 되어야만 하는 논리를 끝없이 주장한다. 이런 때는 일반적이지 않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들도 이용되는데, 0과 1의 세상에 대입되면 이런 극단적인 사례들이 일반적인 것처럼 둔갑해버린다. 이런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인터넷 익명 댓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문제는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층에 속하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국회 같은 집단에서도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꼭 엘리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이 0과 1의 이분법적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지만 실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네 편이 아니면 내 편, 흑이 아니면 백이라는 식이 되어 버린다. 0과 1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컴퓨터조차도 양자컴퓨터가 나오면서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0과 1만 있는 흑백의 세상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