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을 만드는 소통

feat. 고민의 부재

by 브래드
pexels-aadil-4596013.jpg AaDil 님의 사진, 출처: Pexels


18세기 영국의 1차 산업혁명 이후 포들 식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은 효율성을 내세운 성장의 시대였다. 기존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공급이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한동안은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가 지속되었고,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다 보니 규모 면에서 점점 확대되는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수직적이고 기능 중심적인 형태가 대부분의 조직들에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이후 선진국들과 같이 잘 살아보자는 목표 아래 최대한 그들과 비슷하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전략을 구사하였고, 전 세계가 놀랄 만큼 단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고 추월하는 경지에 이르러서는 경쟁이 심화되고, 더 이상 대량생산이 아닌 창의적인 제품과 마케팅으로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제품만이 시장에서 살아남게 되는 분위기로 이미 많은 분야에서 전환이 일어났다. 이제는 효율성 대신 효과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가치의 중심이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뀐다. 그중 하나가 거버넌스(Governance)로 대표되는 조직의 형태와 소통의 방법이다. 기존의 수직적이고 기능 중심의 조직은 상명하달의 군대식 소통 방법을 활용했다. 능력 있는 몇몇의 상위 관리자가 대부분의 정보를 독점하고 판단하여 하부 조직에 지시하면 피라미드 식의 하향적 지시 전달 체계에 의해 일사천리로 각 조직이 담당하는 분야에서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같은 종류의 제품을 다량으로 찍어내고 소수의 문제는 무시할 수 있었던 시기에는 이러한 의사소통의 방법이 기업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고 고객들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시기, 즉 구매력이 생산력보다 더 우월해지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효율성의 가치는 점차 보완되어 효율적이지는 못해도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성의 가치가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였다. 빨리빨리만 외치면서 가다가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안고 있는 결함을 그대로 둔 채 고객들에게 제품을 인도하면 예전과는 달리 ‘한방에 가는’수가 생긴다. 이러한 효과성의 가치가 중요시되면서 기존의 조직 형태와 소통 방식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기존의 수직적 조직 형태와 상명하달식의 소통 방식은 피라미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제를 쉽게 이야기 못하고, 다른 기능 조직에 간섭을 하기가 어렵게 되어있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끙끙 앓거나 문제를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미 유명한 사례가 된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의 괌 추락 사고 이야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부기장이 기장에게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고, 관제소와도 긴급한 상황에 대해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항공기는 추락하고 말았다. 결국 228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이는 수직적(기장과 부기장 사이), 기능적(항공기와 관제소 사이) 조직의 소통 방식의 문제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분명 수직적인 조직체계에서의 소통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다. 사실 편안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는 범위에서 어떤 문제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양쪽 다 조직의 성장 관점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양쪽이 상하관계가 된다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문제를 보고하는 것이 자신이 무능해 보이는 것과 같은 걱정을 하고, 윗사람이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면 보고하는 사람은 자신이 마치 문제를 만들어 내거나 해결할 수 있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실제로 윗사람도 아랫사람 탓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그 문제라는 놈이 윗사람이 모르게 잘 해결이 되거나 알고 보니 큰 임팩트가 없는 거리였다면 다행히 조용하게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몇 배의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리스크의 심각성을 인지한 많은 기업들과 학계에서는 의사소통체계의 약점을 보완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소통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언론이나 교육계에서도 좋은 소통의 사례와 조직의 형태를 소개하고, 선진사례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점점 빨라지는 변화에 대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자 일한 의사결정이 필수라는 측면에서 타당하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리스크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실패하고 마는 것은 이러한 의사소통 혁신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대변해 준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기존 시스템의 단점만 보완해 주는 것은 아니며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진짜’ 문제를 선별해야 하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구성원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다 쏟아내다 보니, 실제 문제가 아닌 것들이 문제로 둔갑하여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자가 잘 생각해 본다면 스스로 제약사항을 정리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도출할 수 있는 최적해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라고 인식하면 일단 꺼내놓는다. 물론 문제를 스스럼없이 꺼내놓을 수 있는 심적인 장벽을 낮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해결 가능한 것은 문제가 아님에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꺼내놓으면 의사결정은 더딜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문제를 발의한 사람 외에는 본질 파악이 금세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를 발의한 사람이 그 문제를 제일 잘 알 가능성이 높고, 해결책을 제일 잘 도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문제를 한번 문제라고 꺼내놓으면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때 한번 방향을 설정하면 바꾸지 않는 인간의 설정 오류에 의해 계속 주장을 굽히지 않게 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 가장 큰 저항자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입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 투입되어야 할 아까운 시간과 자원이 낭비된다. 더욱 문제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면서 좋은 말로 하면 민주적인, 나쁜 말로 하면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경영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문제를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누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면 그게 진짜 문제인지 따져보지 못하고, 문제를 발의한 사람이 어느 정도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때까지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 준다. 문제인 것을 말하지 않고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문제가 아닌 것 혹은 간단히 해결 가능한 것, 또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여 대안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두고 해결하기 위해 조직의 아까운 자원을 소진하는 것도 조직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이다.

문제를 내놓지 않는 문제,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내놓는 문제, 둘 다 모두 조직의 입장에서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효과적이지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지금의 사회는 이미 개방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제를 감추기보다는 최대한 내어놓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쯤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프레임을 던져야 한다.

“이것은 진짜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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