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는 법
3년 전 여름, 어머니가 담가두신 깻잎조림을 꺼냈다.
검은 항아리 뚜껑을 여는 순간, 짭조름한 간장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 속에는 빨갛고 얇은 실로 10장씩 가지런히 묶인 깻잎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촉촉하게 간장이 배인 깻잎 한 장을 들어 올리자, 마치 오래된 편지를 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끝으로 정갈하게 내려앉은 그 깻잎에는 시간이 고요히 스며 있었다.
몇 해 전, 장독대 옆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온 담금돌을 얹으며 웃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의 햇살과 손끝의 움직임, 담담한 표정까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시간이 맛을 내는 거야.”
어머니가 웃으며 하시던 그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어머니는 이제 손가락마다 관절염이 심해져 나무 수저가 아니면 식사조차 불편하실 정도다.
그런데도 야속하게, 항아리 속 깻잎은 어쩌면 그리도 맛이 한결같은 걸까.
짭조름한 간장 사이로 고소하면서도 깊은 향이 은근히 퍼지고,
그 속에는 어머니의 세월과 손맛,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건 단순한 반찬이 아니었다.
손으로 직접 담고, 기다리고, 지켜낸 마음.
정성과 인내가 깻잎과 깻잎사이에 스며든 기억이었다.
나는 아직도 바쁘다는 이유로, 빠르고 간편한 음식에 익숙하다.
시간보다는 속도를 중요시하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의 연세쯤 되었을 때, 나는 과연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깻잎 한 장에 담긴 기억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남을 무언가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게 음식일 수도, 추억일 수도,
어쩌면 따뜻한 손길 하나, 다정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겠지.
실로 촘촘히 묶여 있던 깻잎처럼, 어머니의 마음도 그렇게 따뜻하고 섬세했을 것이다.
그 정성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고,
이제는 내가 그 마음을 어떻게 이어갈지, 무엇으로 남길지 생각하게 된다.
항아리 속 한 장의 깻잎이 내게 알려준 것은 단순한 손맛이 아니라
시간을 담는 법이었다.
언젠가 먼 훗날, 내 아이가 항아리 하나를 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지금 이 순간부터 차곡차곡 담아 온
내가 지켜온 마음의 온기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