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틀리면 빠꾸해도 괜찮아

우리 딸 서나에게 전하는 엄마의 마음

by 서하


1991년 6월 1일,

세상에 널 처음 만나던 날이야.

아빠랑 엄마랑…

그땐 정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올 너, ‘서나’를 생각하며

매일매일 기원했단다.

다른 사람들은 첫아이를 가지면

입덧도 우아하게 한다던데,

엄마는 외할머니 눈치 보랴,

아빠가 힘들까 봐 또 아빠를 사랑하니까,

뭐가 먹고 싶다고 말도 잘 못했던 것 같아.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외할머니가 되어보니

그때가 살짝 억울하네.

엄마도 한창 어릴 때였는데 말이야.

우리 사나는

친할아버지의 사랑 참 많이 받았지.

퇴근하시면 빈손으로 오신 적이 별로 없었어.

고기면 고기, 나물이면 나물,

생선이면 생선…

엄마는 그걸 다 손질하고 요리하느라

솔직히 좀 힘들기도 했어.

하지만 집안일을 마치고 돌아와

세상 그지없이 환하게 웃는 너를 보면

그 모든 시름이 싹 사라지곤 했단다.

사춘기 땐 좀 세게 했지.

엄마가 걸핏하면 학교에 불려 가고,

반성문을 수도 없이 썼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싶기도 했어.

중고등학교, 대학교…

전공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방에서

비누를 만든다며 책상에 온갖 재료를 펼쳐놓고

혼자 공방을 차리더니

예쁘게 캔들 브랜드까지 만들었지.

지금은 제조까지 하는

작은 회사를 이끄는 대표가 된 우리 딸.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는지

엄마는 지금도 감탄스러워.

그때 너는

“엄마~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하며 소낙비처럼 마음을 쏟아냈지.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단다.

요즘 엄마는

‘폭삭 속았어요’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어.

양관식이라는 인물이

딸 금명에게 말하더라.

“금명아, 수틀리면 빠꾸해~

상황이 안 풀리면 물러서도 돼.”

그 장면을 보는데

엄마는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

왜 그랬을까.


서나야,

지금껏 아무리 힘들어도

잘 표현하지 않던 우리 큰딸.

엄마는 네가 안쓰러울 때가 많아.

하지만 알지?

아빠랑 엄마는

늘 언제나 네 편이야.

지금처럼 서로 아끼며

사위랑 함께 걸어가는 모습,

엄마는 그게 참 좋다.

고맙고, 또 고마워.

그리고, 올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염색이 자꾸 귀찮아지는 걸 보니

엄마도 이제 나이 드나 보다.

그래도 괜찮아.

우리 딸이 있으니까.

사랑해.

우주만큼, 땅만큼, 그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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