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읽고

오늘의 필사 문장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by 서하


―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읽고

오늘의 필사 문장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란 걸.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라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다시 조용히 필사했다.

내 마음속에서 뭔가 조용히 내려놓으며 다시 세워지는 느낌.

요즘은 어디를 나가는 일조차 큰 결심이 필요하다.

예전의 나는 이랬었나 싶다.

가끔은 탭 하나 들고 지하철을 타고

남대문 시장을 지나 시청 앞까지 걷는다.

사람 붐비는 주말이면, 나도 어딘가 섞여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전시회를 갈까 하다가도 마음이 끌리지 않을 땐

그저 걷는다. 발길 닿는 대로.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말.

“인간에게 공허는 최대의 괴로움이다.”

우리 어머니를 떠올린다.

하루의 시간들이 너무 길지는 않을까.

무엇으로 그 긴 시간을 채우실까.

인간은 매일같이 감동하거나 감격하며 살 수는 없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의 방향’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하루의 주제를 정하고

말보다 글로 풀어내다 보면

내 마음도 어느새 방향을 바꾸곤 한다.

살아보니 자식 노릇도 참 고단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할 테지.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오늘의 문장.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

이 말이 오늘은 유독 가슴에 콕 박혔다.

나는 늘 흥얼거리듯 이런 말을 한다.

“가장 좋은 방향으로 믿어주는 거다.”

하지만 그 말처럼 행동하기란, 참 쉽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내 곁에 살아계신 어머니를 보면

그 무던함에 놀란다.

무슨 일이든 덤덤하게 받아들이시고,

참을성은 끝이 없으시다.

“얘들아,

엄마는 바보인가 봐.

난 아직도 상추쌈에 고기 노릇노릇 구워

옹기종기 앉아 밥 먹을 때가 참 좋다.

자식들 크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어머니의 이런 말씀 하나가

마치 접힌 페이지 속 한 줄처럼,

오랜 시간을 건너와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이케다 다이사쿠 시인의 말처럼,

“자연은 살아 있다. 계속 변한다.

두 번 다시 똑같은 경치는 없다.

그 풍경을 보는 자신도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접힌 페이지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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