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요, 아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소크라테스가 너한테 할 말 있대.

by 하이디어

태어나기를, 민감한 성향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보이는 모습이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 있다. 이 둘다가 내 정체성(Personality)의 일부분이다. 나는 감정에 민감하고 때로는 내 안에 있는 감정에 온통 파도처럼 휩쓸려버리거나 다른 이의 감정에 녹아내려버릴 때도 있다. 감정 중 불안과 슬픔을 가장 통제하지 못하며, 정신과 의사는 그걸 불안과 우울이라고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고 다른 길을 제시하려 하고, 상담사는 불안한 나를, 우울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고, 때로는 내 생각을 반박해 주고, 무엇이 날 편하게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청년기의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면서 주저앉고 싶어지는 마음을 약은 물론이고 상담을 받으며 지냈다. 구조화 집단상담, 비구조화 집단상담, 인지행동치료 개인 상담...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고, 창문 앞에 주저앉아 덜덜 떨 때처럼 급할 때에는 급한 대로 생명의 전화에 도움을 청하곤 했다. 어떤 것도 날 만족시키진 못했고,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던 건 내가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견딜 만 해졌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이제 그만 등 뒤에 과거를 두고 멀리 날아가고 싶었다.


태어나기를, 약하게 태어난 것 같지는 않다. 어릴 적 11살 많은 큰 오빠는 종종 나를 '우량아로 태어났다'라고 놀리며, '돼지'라고도 했다. 알고 보니,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저체중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봤자 몇 십 그램 차이지만, 신생아에겐 큰 차이긴 하지.) 얼마나 지독하게 놀렸는지 나는 내가 계속 뚱뚱한 줄 알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몸무게를 재는데, 저체중이라고 하면서 밥을 잘 먹으라고 했다. 나중에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고 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핼쑥한 내 얼굴에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신체검사 후 큰 오빠의 인상 비평은 믿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어났을 때의 몸무게와 달리 지금은 큰 오빠가..... 여기까지!)


매일 글을 쓴다. 긴 글은 아니다. 내 맘에 드는 질감의 무지 노트에 내가 좋아하는 0.28 유니스타일 핏 펜으로 썼다. 웹에 글을 올릴 때에는 어느 정도의 길이에, 어른인 척하는 내 모습이 자동 장착되지만, 노트에는 어린애 같은 내 모습이 가득하다. 사랑스러운 글씨와 못생긴 글씨가 가득하다. 어떤 글이라도 막 쓴다. 입으로 하지 못하고 있었던 수다를 글로 할 때도 있다.


"선생님, 저는 그런 제가 좋다고요! 병원에서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로 말을 거는 제 모습이요. 제가 그렇게 친화적인 사람인줄은 몰랐어요. 거의 집에 혼자 있고 자주 외로워하는 줄만 알았지,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줄 몰랐어요. 병실에서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자도 이야기 때문에 전혀 힘든 줄 몰랐어요."


의사가 너무 남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은 안 좋다고 반박하길래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아무래도 일본인 성향이 있는지, 다른 사람의 말에 고개를 자주 끄덕이고 '네'라는 긍정의 표현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그런 잔 행동들.


지겨운 정신과. 의사의 짧고 어색한 교훈적 상담이 별로라 느껴져 찾고 싶지 않았지만, 수면박탈이 너무 심해 호르몬 약으로만 해결할 수가 없어 병원을 찾았다. 어떻게 매일 서너 시간, 심할 때에는 두 시간만 자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참고로, 낮잠도 못 잔다. 그러길 수어 년이 되니, 거울 속 내 눈 밑이 검게 처지며 몇 배의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새벽 2시에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덕분에 질투 많고 욕심 많은 우리 할머니를 조금이나마 어린아이처럼 다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할머니에겐 자신을 지켜주는 부모와 남편이 없었다. 사랑이 뭔지 모르고 성장한 아이가 되어 어른의 얼굴을 하고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병원이, 의사가 약으로 나를 재워주길 바랐다.


"근력이 부족하면 잠을 유지하는 힘이 없다고 해서 팔 굽혀 펴기와 스쾃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아파트 1층에 내려가 30층에 있는 옥상까지 계단으로 올라가고요. 이불의 청결 때문에 그런 걸까 봐 자주 빨고 시간 날 때마다 건조기에 침구 털기 코스를 해요."


내 잘못으로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이제 약을 먹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면제는 안 된다. 정신과를 찾은 건 내가 알고 있지만 그냥 내버려두는 신경정신학적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맞다. 나는 불안이 높고 우울이 높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 알고 있다. 불안과 우울로 인해 통제욕이 강하다는 것. 안전하게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드러내는 통제욕과 그로 인한 승질머리. 다른 사람이 들으면 말투의 어조가 차분하기 때문에 내가 화난 줄은 모르지만, 안전하게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화난 것을 잘 알아챈다. 물론 알아채기까지 시행착오가 좀 있긴 했지만.


동시에 상담도 받고 있다. 내면의 혼란을 함께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의사에게는 약을, 상담자에게는 안식과 용기를 기대하며.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몸소 느낀다. 최근 돌발 행동이 잦긴 했다. 그걸 돌발 행동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변하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의 전과 후가 다르긴 하다. 나는 가끔 결심을 한다. "이제 안 해본 걸 할 거야", "나 자신을 가꾸는 데에 시간을 좀 더 들일 거야", "어른이 될 거야-> 어른처럼 입고 다닐 거야. (행텐 그만 사 입고)" 그러나 지나치지는 않게.


요가를 시작했다. 충동적으로 계획해서 머리 파마를 하고는 지나는 길에 요가원을 보고는 들어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게 2주 전이었다. 자신이 없어 주 2회권을 끊어놓고는 주 3회를 하다 보니, 횟수 차감이 빨리된다. 이제는 머릿속에 요가 밖에 없다. 그냥 요가밖에 없다는 것뿐이지, 요가를 계속한다는 건 아니다. 현재 요가복이 편해서 계속 입고 있기는 하다. 여러 프로그램이 있어서 하나씩 다 해보는 시간이었는데, 아직도 해보지 못한 게 여러 개 있다.


어제는 인요가를 했다. 가장 정적인 요가다. 한 자세에 오래 머물며 내 몸을 편안하게 하는 요가다. 명상의 효과까지 있는 요가다. 몸을 엄격하게 정렬하지 않아도 되는 요가이기 때문에 요가를 하면서 내 몸에 불만을 가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결혼사진 찍을 때 빼곤 처음으로 네일 아트를 받아봤다. 우선 잘 모르니깐 기본적인 것으로. 며칠 전에는 드디어 내 또래들이 스트레스 쌓일 때 한다는 네일 (진짜) 아트를 받아보기도 했다. 우주가 내 손톱 안에 있다. 자세히 보면 귀 큰 공룡 같은 강아지도 엄지에서 발랄하게 자기 존재를 뽐내고 있다. 네일 (진짜) 아트를 하는 날도 잠을 별로 못 자 피곤한 상태여서 눈이 감기곤 했는데, 2시간 가까이 누군가가 다정한 손길로 한낱 미천한 내 손톱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네일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것은 "자 봐! 내 손톱 이쁘지?"가 아니라, 그건 타인이 나를 다정하게 대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 손톱에 우주와 (공룡? 아니,) 강아지를 새겨주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불안하고, 조금 슬프다. 아니, 겨우 견딜 만큼 불안하고 슬프다. 그럴 때마다 이 백지의 우주에 글을 쓴다. 내 신호를 들어주세요. 내 글을 읽어주세요. 그러면 좀 살 것 같거든요. 당신이 읽었다는 표시가 있으니, 내가 살아있었던 게 맞군요.


오랜만에 글을 업로드한 걸로 봐서 내가 얼마나 괜찮은 날을 보내고 있었는지 다들 짐작할 것이다. 내 얼굴을 정면으로 쏴대는 이 네모난 하얀 우주. 거기에 내 신호를 긴 네모로 쌓아가고 있다.


갑자기 건네는 인사, 안녕!


안녕!


힘 있게 다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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