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_사랑 노래만큼은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어

by 하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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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 민시후의 「Love」

https://youtu.be/vW0n5PZhhGE


사랑이 가여운 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진통제라면, 이별은 내부의 오래된 상처에 칼을 대고 재건하는 수술과 같다. 개인에 따라 사랑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겠지만, 지난 시절 나는 사랑보다는 이별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11~12년 전에 내가 쓴 글에는 이십 대의 불안정한 정서가 그대로 배어 있었는데, 젊고 불안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던 순간이다. 얼마 전, 신랑이 집에서 작업을 하면서 틀어놓은 넷플릭스의 〔로맨스가 필요해 2〕를 보고 "쟤네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되게 힘들어하네"라고 얘기했는데, 지난 내 일기가 더 그렇다. (심지어, 로필 2는 2011년 방영작이고, 내 일기는 그보다 3,4년 전의 글이다.) 그러다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 때문에 힘들어할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니. 그건 네가 아직 젊다는 거야." 당시에는 어머니의 그 말에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머니가 어떤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한다. 이제 사랑 이야기보다 다른 데에 더 관심이 가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 그때의 내 사랑에 관한 고민이 가치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주의 : 이 글은 제 글이긴 하지만, 20대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지금의 저에게 준 영향은 있겠지만, 직접적 상관은 없습니다 :)

2008.04.22 09:10 전체 공개


언젠가 이 시간을 돌이켜보며,

<그때가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지. 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별빛이 떨어지는 것 같았어>.

아픔을 끌어안고 오기를 한 시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마중을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창을 통해 내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한 낯빛은 낯선 이의 얼굴처럼 어색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엄마'라는 단어만 읊조리는 것이었다. 아픔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 '엄마'. 나보다 더 창백한 얼굴로 황망하게 나온 엄마의 몸 여기저기에 바람의 흔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엄마, 미안".


알 수 없는 고통에 홀로 시달리면서도 그 고통의 시간들 사이에서 날 구원해주는 이들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예전엔 아플 때마다 지독하게 외로워져서 더욱 힘겨웠다. 고통의 시간으로 들어갈 때마다 느끼던 공포는, 아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아프면서 겪을 외로움 때문이었다.

사랑이 날 강하게 만들 것이다.


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을 어쩌지 못해, 실제의 그로부터 잔인한 부정의 대답을 듣길 원했다. 바람을 이루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슬픔과 동시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젠 마음껏 슬퍼만 할 수 있구나, 하는.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는 일 밖엔 없다는 생각이 날 안심시켰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고통의 시간이 아주 먼 옛날의 일 같다. 기억에는 있는데, 감정에는 전혀 없는. 마치 허름한 극장 한 귀퉁이에서 복잡 미묘한 욕망을 다룬 프랑스 영화 하나를 보고, 햇빛 속으로 나온 것 같은. 하, 표현이 우습지만, 정말 그런. 도시의 햇빛 속으로 나오자, 영화 속의 인물들과 내가 얼마나 많은 물리적 거리의 차와 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깨달으면서, 내 삶 속에선 그들처럼 표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극장 속에선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이 내 것처럼 느꼈지만, 햇빛 속에선 그들과 나의 다름만 절실하게 느낄 뿐이다.

사랑하는 이가 준 프리지어 다발은 향기를 내뿜으며 날 내려다보고 있어요.

'안녕, 사랑아, 날 기억해'하면서.


2008.03.15 20:36 전체 공개



몰아치는 바람과 우리를 스쳐 지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마치 물속에 깊이 가라앉으면서 나뭇가지를 잡는 심정으로. 그의 팔을 잡았지만, 나는 물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 신비한 짐승의 금빛 눈이 홀리려는 듯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 있던 집안사람의 소매를 붙잡고, 눈앞의 행렬이 내게 주는 공포에 가까운 환희로부터 여차하면 도망칠 태세로 서 있는 자신을 느꼈다. 나의 인생에 맞서는 태도는 이즈음부터 이런 식이었다. 너무도 기다리던 끝에, 일이 일어나기 전의 공상 속에서 너무도 지나친 수식을 해대다가 마침내는 도망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그가 내 앞에 있을 때보다 그가 없을 때 그를 생각하며 지내는 게 더욱 좋다.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발견하고 마침내는 그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까지 이르렀다. 그와의 단절이 이것을 내 사랑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와 닮은 사람을 보거나 그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전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다음부터 그 사람의 말을 하나, 하나 새겨가며 듣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여행을 좋아한다거나 요리를 잘한다고 하면, 그전엔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한 후의 상황은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가 하는 일이 TV 드라마 같은 데에 나오면, '그도 저렇게 일하겠구나'하면서 배우에 그를 대입시켜 환상을 본다.


울지 못해서 무릎이 대신 아픈가 보다, 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말에 그는 모질지도,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게 나의 아픔을 무시했다. 무릎의 고통을 얘기하면서 바라던 것은 다만 그가 내 아픔을 알아주기라도 바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이 엄청난 욕심인 것처럼 대했다. 내 아픔은 내 고유의 것이지, 전염병이 아닌데 말이다.

스무 살, 어느 한밤중에 무릎의 통증이 폭풍처럼 몰아친 적이 있었다. 홀로 방 안에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견뎌냈다. 약을 찾아, 방안의 불을 켜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통증 때문에 주저앉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그렇게 처절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약을 먹고 일시적인 안정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긴긴 시간을 아픔에 바쳐야 했다. 그 생생하게 펼쳐지는 아픔이 오히려 날 더욱 영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평생 나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이 그렇게 절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경우가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가 떠나고, 나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지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나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때부터 1년 동안 나는 내 손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피멍이 채 가시지 않은 손을 또다시 망가뜨리고 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내 아픔에 대해 낱낱이 분석하면서도 그 이상행동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내 손을 또 한 번 망가뜨렸다.

울다가 잠들어서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기운이 빠져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워 있으면서도 울었고, 수분 부족 때문에 물을 마시면서도 울었다. 지금까지 슬퍼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흘리는 것처럼. 댐을 무너뜨리고 홍수를 내듯이.


그와의 통화에서 그는 저녁에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우리 서로 연락이 없다. 애초에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전화를 하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어쩌면 나에게 잔인한 일이다.

그는 나에게서 팔을 빼려고 했지만, 난 '십 분만' 하면서 그의 팔에 매달렸다. 그리고 십분 후 나는 그의 팔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그의 팔을 풀고 걸으면서 내가 힘 없이 혼잣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내가 좀 더 예뻤다면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까?"그러나 정말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 그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얼굴이 변할 수 없는 것처럼.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아파하는 날 보면서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 서울에 올라왔을 때, 동네에 미친 여자가 하나 있었다. 지나가는 남자들만 보면, '이리 오라'라고 손짓하고 철부지 애들에겐 돌을 맞기 일쑤였다. 여자가 미친 이유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여자의 집안은 권위적인 양반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는 수없이 여자의 부모는 여자의 잃어버린 연인, 남자에게 부탁을 했다. 하룻밤만 지내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남자는 여자를 다시 한번 떠났다. 당연하다. 어느 남자가 미친 여자와 영원을 꿈꿀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이야기했을 당시, 나는 정말 사랑 때문에 미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모습에 가슴 아파했지만, 극에 치달아가는 나를, 나도 도저히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그에게 날 미치게 않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답을 몰랐고, 이미 내가 했던 얘기를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아파하고 있는 나를 기억해 내는 건, 그에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아픔에 숨 막혀 허덕일 테니까.


그래, 나는 지금 환생한 것이다. 연인과 나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약을 나누어 먹고, 그는 날 매번 잊지만, 나는 잊지 않고 매 생애 그를 찾아내 사랑한다. 사랑하고야 만다.


그가 없는 곳에서 그를 내 속에서 재생시키면서 이 사랑의 방식을 내재화했고, 그것이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이유다. 조그만 자극에도 소스라치는 토끼가, 바로 나다.



2008. 03.10 21:31 비공개


그와 마지막으로 본 이후, 숨 쉰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호흡하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오늘 지하철 정거장에서 그의 뒷모습을 봤다. 정확히 말하면 봤다고, 착각했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를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젠 견딜 만 한데, 그를 닮은 뒷모습을 보고 '아, 그 사람과 닮았다'라고 언어적 표현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전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눈앞에 그의 뒷모습이, 손만 뻗으면 그의 등이, 그의 팔에 닿을 그곳을 도망치듯 나와 건물 사이 어둠 속에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때만큼 태양이 잔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통계 수업은 2시 정각에 진행되었고 오랜만에 수학 공식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교수가 한순간 지었던 미소에서 갑자기, 내 온몸에 힘이 빠졌다. '만약 내가 본 것이 정말 그 사람이라면?', '그게 환상이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여긴 그 사람의 학교이면서 나의 학교이기도 하니까. 자연스레 우리가 처음 만난 공간에서 그가 홀로 앉아있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속눈썹 사이에서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쓸쓸한 풍경이 날 덮쳤다. 봄이 이럴 순 없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옛 연인들의 얘기를 꺼내면서 그들을 모두 사랑했노라고 하는 그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가 이제까지 했던 사랑 방식과 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난 한 사람을 잊기 위해 1년을 혼자 있어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잊기 위해 6개월을 혼자 있어야 했다. 어떤 사람을 잊어가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존재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홀로 있는 것이 나의 사랑 방식이다. 그렇다고 그의 방식이 이기적이라든가, 틀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사랑이란 순전히 나의 것이지, 어쩔 때는 대상이란 매개체 역할로 끝나기 때문이다. 실현의 궁극적 대상이 아니라.


오늘 자정, 오로지 그에 대한 마음만을 담기 위해 채워갔던 노트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줄을 쓰면서 내가 깊은 한숨을 쉬었는지는 모르겠다. 깊은 피로감에 쌓인 것만 분명했다. 이걸 다 채우면 정말 '우리'의 끈이 다하는 것 같아, 일주일 넘게 미뤄뒀던 것을 이제야 완성했다. 다음날 일어났지만, 한동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건지(말하자면,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는 것을 거부), 눈이 건조해서 그런지는 구별이 가지 않는다. 다만 놀라운 건 이젠 눈을 뜨자마자 그를 자동적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다가, 거울 속 내가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일주일 전과 다른 나를 보면서 '당신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어볼 뻔했다.(MMPI-2 검사 질문 항목 중에 <최근 종종 이상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습니까?>에 대한 질문이 뭘 뜻하고 있는지 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정말 거울을 보면서 진지하게 누구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정신분열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안부 문자를 보낼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애써 참아냈다. 그리고 오전을 이리저리 시간에 휘둘리면서 보내다가 오후에 학교 지하철에서 그의 뒷모습을 본 것이다.


수업 시간이 촉박해서 언덕을 빠르게 올라갔지만, 비단 수업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의 정당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가슴을 다독이며 걷는 날 보며 지나가는 어떤 사람들은 왜 저토록 힘들게 이 언덕을 넘으려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유리 지바고는 라라의 뒷모습을 쫓다가 심장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실제로 라라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라라를 닮은 여자의 뒷모습이었는지도.)


어제 한 친구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나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앞에 있는 이 친구와 키스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작 그의 앞에선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앞에 서 있을 땐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서는. 내 살아있는 감각기관이 온통 '그'(여기선 존재론적 가치로서의 '그')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대화가 튄다'라고 표현했지만, 그러기 전에 내 눈을 한 번만 들여봤으면, 내 눈 속에서 스스로 불이 되어 타고 있는 작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사랑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 이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병적인 이 감정을 규정하면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랑 노래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2008. 03. 03 23:11 비공개


부끄럽고 힘들고 깨어진 꿈들 속에서도
아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_막스 에르만 「잠언 시」 중



응, 아직은 아름다운 나이다.


2007.12.13 21:34 비공개


추워서 꼭 닫아 놓은 창문으로 비 냄새가 스민다. 세상엔 작은 틈이라도 발견하면 이렇게 파고드는 존재들이 있다.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사랑하는 대상과 어떤 형태로든 모든 관계를 맺길 갈망하는 영혼의 쓸쓸함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있지도 없지도 않은 것의 대표적인 형태다. 사랑은 그 형태를 쉴 새 없이 바꾸므로 하나의 이름을 붙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 변화무쌍함으로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으니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거대한 도넛의 홀처럼 거부했다가는 그 무게가 실로 엄청나 비웃음만 사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처절하게 외롭고 마음 아팠을 미스 아밀리아여, 사랑을 잃고 허름해진 카페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영원히 너의 사랑을 기다리며 늙은 별처럼 공중에서 흩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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