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 가고 있다. 동지가 지나면 밤이 짧아진다는데 실감 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아침을 깨우는 알람이 울린다. 며칠 전에 촬영한 마을에 있는 동굴이 방영되는 날이다. SBS 모닝와이드 3부에서 방영된다. 눈이 뿌리는 날이다. sbs 제작진이 동굴 취재를 왔다. 태백은 탄전지대라 굴이 많다. 탄광에 석탄을 캐던 굴도 있다. 인근 상동에는 중석을 캐던 굴이 있다. 철암에는 금을 캐던 금광골 지명이 남아 있다. 구문소마을에는 아연을 캐던 광산도 있었다. 백두대간이 융기되면서 지하에 있던 광물질들이 생겼을 것이다. 6~70년대 광물을 생산하기 위해 번성하던 지역들이다. 오늘 방영된 굴은 고원 도시에 논농사를 위한 수로와 관련이 있다.
취재진이 사전답사를 나왔다. 구문소농촌체험휴양마을 옆에 동굴이 있어 안내한다. 여름철 수목으로 덮였던 동굴이 겨울이 되자 모습을 드러나고 있다. 도로에서 입구까지는 가깝다. 가시덩굴이 약간 덮여 있고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동굴 입구는 넓다. 사람이 충분히 설 수 있다. 바닥은 진흙탕이지만 겨울이라 빠지지 않는다. 조명을 비추면서 안으로 들어가 본다. 점점 좁아진다. 다시 나와서 안전 장비를 준비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입구에서 동굴에 얽힌 이야기를 인터뷰했다.
아침에 방영되는 동굴 이야기가 궁금하다. tv에 바짝 앉아 나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촬영한 미스테리 동굴이 나온다. 동굴 안에 장비를 넣어 보니 80m 지점에서 흙이 막고 있다. 예전에는 동굴 양쪽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반대편은 토사가 막고 있다. 본격적으로 동굴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다. 동굴학자가 동굴 내부를 살핀다. 강원도 동굴은 석회암 지형에서 생긴다. 석회암이 지하수 용식 작용을 받아 동굴이 만들어 지는데 동굴면이 매끈매끈하다. 마을에 있는 동굴은 거칠고 각이 져 있다. 지질학자가 살펴본다. 구문소마을 암석은 5억년 정도 추정되는 고생대 지형이다. 5억년 전 암석에 동굴이 생성되기는 어렵다. 구문소 미니동굴은 인공동굴이였다.
제가 한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눈 내리는 날이다. 촌스럽게 목도리를 하고 동굴 입구에 있다. “옛날 산간 지역에 논이 있었는데 물이 부족해서 반대편 황지천 물을 끌어오기 위한 농수로 였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 인터뷰 장면이 이어졌다. 구문소마을에서 논농사를 지으신 분이다, “벼농사를 1970년대부터 한 10년 했는데 새마을운동 때 터널(동굴)을 뚫어서 했다‘한다. 나도 어릴 적 마을에서 모내기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줄모를 심었다. 나이 많으신 두 분이 논두렁 양쪽에 줄을 띠운다. 모내기 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 벼모종을 잡고 다른 손으로 줄에 맞춰서 모을 심는다. 줄을 넘길 때 큰소리를 친다. 미쳐 심지못하면 줄이 얼굴을 때린다. 가끔씩 줄을 잡고 있는 어르신이 장난으로 줄을 튕긴다. 힘든 모내기를 웃고 즐기면서 한다. 나는 어릴 적 모를 심지는 못했다. 모판을 옮기는 일을 도왔다. 질퍽한 논바닥에 발이 빠지지 않아 진흙탕에 빠진 기억이 생생하다.
오래전 태백에 논농사를 하는 곳은 구문소 마을과 메밀뜰 마을이 유일했다. 메밀뜰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 물레방아를 돌려서 양쪽 마을 나락을 찌었다. 구문소 마을 동굴 수로는 메밀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논농사는 물이 필요한 작물이다. 물이 부족하면 논바닥이 갈라진다. 산간 지역에는 저수지가 없다. 하늘에서 비 떨어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 농부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가로막힌 산을 뚫어 수로를 만들었다. 넓은 평야에 비하면 작은 논이지만 산간 지역에서 쌀밥을 먹기 위한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생각난다. 자기 논에만 물을 댄다는 뜻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옛날 분들은 서로 물을 대기 위해 다투기보다는 수로를 내는 지혜를 선택했다. 최근의 시국을 생각해본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이중적인 잣대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절대 권력도 민중의 힘을 이길 수 없다. 탄핵정국이 되었다. 법칙만 내세우고 설득과 소통은 사라졌다. 서로 탓만 한다. 정치는 실종되고 대립만 난무한다. 역사를 보면 백성의 아픔을 만져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엄니와 함께 아침 방송을 시청한다. 오래전 기억들이 회상한다. 모내기하던 이야기, 논둑에 앉아 참을 먹은 이야기. 나락을 베고 탈곡하던 이야기, 볏짚을 가마솥에 소죽을 만들어 먹이던 이야기도 한다. 지금은 논이 사라지고 없다. 쌀밥도 마음껏 먹은 세상이다. 한때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한다. 마을에 논농사에 사용했던 수로는 농업유산으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