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다녀와서
어머니 산소로 벌초하러 가는 길. 수풀이 키보다 크게 자라 길을 가렸다. 대충 위치만 짐작해 엄마 산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초기를 바닥에 두고 시동을 걸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미리 점검한다는 게 미루고 미루다가 그냥 왔다. 어제 한다고 했는데 늦은 밤까지 일한다고 체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몇 번의 시도하자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이제부터 풀과의 전쟁이다.
내 키보다 크게 자란 억새풀과 나무들을 베어 갔다. 중간중간 풀 줄기가 칼날에 감겨 멈춰 서면 시동을 끄고 풀을 떼어 내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모자 아래로 땀이 흘러 눈 안으로 들어가 따가웠다. 가슴팍 골 사이로 땀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예초기로 풀을 베고 지나간 자리에 형이 따라오며 갈퀴와 낫으로 예초기가 닫지 않는 곳에 풀을 베고 정리했다.
풀이 너무 길어 한 번에 베어 낼 수 없었다. 서너 번은 베어야 했다. 팔뚝이 저리도록 아팠다. 돌이나 나무에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게 무서웠다. '벌초를 꼭 해야 되나? 그냥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지만 일 년에 한 번뿐인 벌초인데 조금만 참자라며 마음을 다 잡았다.
한 시간여 동안 사투 끝에 드디어 묘지 형태가 온전히 드러났다. 형의 옷도 내 옷도 땀에 흠뻑 젖어 살갗이 훤히 비쳐 보였다.
흙에 묻어 있는 묘비를 닦았다. 1925년생. 경남 사천군 곤명면. 올해가 엄마 탄생 100년이 되는 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돌아가신 지 벌써 41년이 흘렀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형과 엄마 이야기를 나눴다.
"인구야, 엄마가 글도 몰랐는데 진짜 똑똑한 분이셨다. 멀리 내다볼 줄 아시는 분이셨어."
형이 늘 들었던 말씀이 있다고 했다.
"형구야, 돈 있으면 무조건 땅에 묻어라"
형은 그 말씀에 따라 봄마다 송아지를 사서 가을에 어미소로 키워 팔아 논을 하나씩 늘려나갔다고 했다. 형은 20년 전 부산 해운대 지역 지하철역 인근에 5층 오피스텔 건물을 매입했다. 지금은 월세 수입으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매년 벌초철이 되면 가기 싫었다. 형이 날짜를 정해주면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따라나서곤 했다. 홀로 6남매를 키우시느라 온갖 고생을 다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 덕분인데 그동안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몸에서 나던 땀이 식어가니 시원했다. 깨끗하게 정리된 묘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후련했다.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마음은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찼다. 100년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어머니 사랑의 깊이를 새삼 깨닫게 된 날이었다. 오늘 벌초는 풀만 벤 게 아니라 내 안에 불평과 게으름과 무심함까지 베어낸 하루였다.
엄마~ 그곳에도 가을이 오나요? 아들이 손녀 '이레'를 낳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