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1100 고지 지의류처럼, 돌에 꽃을 피우는 방

by 정글



기다려주자. 시간을 허락하자. 돌에도 꽃이 필 때가 온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가족여행 4일째 날. 섭지코지에서 일출을 보고 제주 한라산 1100고지 습지를 향했다. 숙소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 운전하는 조카가 10분 후면 도착한다고 차내 안내방송을 했다. 잠시 후 갑자기 귀가 먹먹했다. 한참 동안. 침을 삼키자 귀가 뻥 뚫렸다.

%EC%84%AD%EC%A7%80%EC%BD%94%EC%A7%80%EC%9D%BC%EC%B6%9C.JPG?type=w966 제주 섭지코지


1100고지 습지(해발 1,100m)는 한라산이 수천 년에 걸쳐 빚어낸 자연의 걸작이다. 16개 이상의 습지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2009년 습지 보호구역으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람사르 습지 :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된 '습지 보전 국제 협약'에 따라 지정,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만 등록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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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만 사는 멸종 위기 1급 매가 서식하고, 제주도롱뇽, 노루 등 다양한 야생동물의 안식처이다. 탐방로 곳곳에 동식물에 관한 안내표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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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의 물은 야생동물들의 중요한 식수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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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끼가 신기했다. 돌에 꽃이 핀 모양. 지의류(地衣類)는 균류와 조류가 공생하여 형성된 독특한 생명체라고 한다. 대기오염지표 생물로서 1100고지 습지의 건강한 자연환경을 알려주는 중요한 생물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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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는 나무 데크로 만들어졌다. 습지를 훼손하지 않고 관람이 가능하다.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가량 소요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수천 년 전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탐방로를 걷는 도중 곳곳에 새소리가 들렸다. 녹색 돌이끼들을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다. 펄쩍 뛰어내려 푹신한 돌이끼에 앉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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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고지 습지는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수많은 생명들의 안식처이며, 생명수가 흐르는 곳이다.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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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고지 습지 관광을 마치고 중문 관광단지로 내려오는 길. 의자 뒤쪽에서 아내와 처형이 이야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손가락을 귀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내가 말을 해 봐도, 코를 막고 공기를 밖으로 내뱉어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나이가 들어 벌써 귀가 들리지 않는지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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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관광단지 도로 안내판이 보이자 비로소 귀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차 안에 동행한 6명 모두가 그랬단다. 1100고지에서 차로 급히 내려오느라 귀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게다. 그 시간을 못 기다리고 걱정하고 방방 댔던 나는 모라란 놈임에 틀림없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급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잘하고 있지만, 뭔가 좀 힘들고 인생이 잘 안 풀리고 답답하다. 지금 내가 빨리 뭘 해야 하는데 손에 잘 안 잡히고 뭔가 꽃이 안 피냐며 조급해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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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해야 될 게 자기 자신한테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1100고지 습지가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졌듯이.


내가 매일 해야 하는 3가지를 정해, 꾸역꾸역 그 일을 계속하며 나에게 시간을 주자. 그러다 보면 한라산 지의류처럼 돌에도 꽃이 피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오늘도 4시 30분 일어났다. 일어나기 여전히 힘들다. 회원들과 미라클 모닝을 했다. 1536일째다.


로마도 하루아침에 지어지지 않았다.

습지도, 돌꽃도, 인생의 변화도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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