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어제 추수감사 주일이었습니다.
주일 설교를 듣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1955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룩 간호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후반의
두 여성이 있었습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푸른 눈을 가진 그들은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라는
소식 하나에 낯선 땅, 한국행을 결심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봉사는 43년이 되었습니다.
한센인들의 상처를 씻어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청춘을 다 바쳤습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그저 묵묵히.
2005년 11월 22일.
70이 넘은 두 수녀는 작별 인사도 없이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습니다.
그들이 남긴 건
한 장의 편지뿐이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오히려
우리가 짐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인사하지 않고 떠납니다."
43년을 바친 사람이,
자신이 '짐'이 될까 걱정했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당신께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외국인인
우리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저희의 부족함으로 인해
마음 아팠다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아주 큽니다.
그 큰마음에 우리가
보답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감사해 주실 것입니다
(책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중에서)
편지 곳곳에 '감사'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큰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큰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큰마음에 우리가
보답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감사해 주실 것입니다.
편지 마지막 부분에
너무 많은 감사를 다 표현 못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감사해 주실 것이라고!
억울하지 않았을까?
답답하지도 않을까요?"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43년 동안 자신의 모든 젊음과
인생을 바쳐 이름 없이 희생했는데,
편지에는
'억울함' 대신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원망' 대신 '사랑'이 넘쳤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빈손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지금 제게는 집이 있고,
차가 있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손자와 손녀도 있고,
늘 곁에 아내가 있습니다.
건강도 있고,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졌는데,
저는 얼마나 자주 불평했는지......,
"오늘 출근하기 싫다"
"왜 이렇게 피곤한가"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인가"
많은 것을 받았으면서!
모든 것을 바치고도 감사했던 그들보다
저는 훨씬 더 많이 불평했습니다.
성경에는 일곱 개의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왜 하나님은 일 년에
일곱 번이나 절기를 만드셨을까요?
인간은 자주, 너무 쉽게 은혜를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일 년 중
일곱 날만이라도
멈춰서, 돌아보며, 감사하라고
하신 것 아닐까요?
오늘, 새로운 월요일 아침입니다.
출근길이 지옥철! 마음이 무겁지 않나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버겁지 않나요?
상사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요?
잠시 감사할 거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내 곁에 누가 있는지?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소록도의 두 수녀님은
43년을 바치고도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루 3가지 만이라도
감사해 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 떴을 때 하나,
점심 먹을 때 하나,
잠들기 전 하나.
작은 것도 좋습니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감사합니다"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감사한 것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혹은 마음속으로 말해보세요.
그 작은 감사가 오늘 하루를 바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