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짐인가? 축복인가?

가족은 짐인가? 축복인가?

by 정글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짐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축복이면 좋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가 되기도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가족(家族)은 주로 혼인, 혈연, 입양으로 맺어져 주거와 생계를 공유하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 집단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의 의미는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로 점차 확장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공원묘지 앞에 꽃을 갈아끼웁니다.

비록 조화지만 향기를 뿜어낼 듯 싱싱해 보였습니다. 공원묘지 관리인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죽은 이를 위해, 남은 가족을 위해 정성껏 관리한 흔적이 잘 정돈된 잔디에서 느껴집니다.


누군가는 묘지를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 소리가 아우성치는 곳이라고...

나도 후회 없이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

생각하게 했습니다.


막걸리, 노란 시루떡, 과일, 오징어, 유가로 묘지 앞에 상을 차렸습니다. 향을 피우고 막걸리를 따랐습니다. 모두 일렬로 서서 절을 했습니다. 나와 아내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가족 순서대로 술을 따르고 반복했습니다.

"하나님 이 가족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돗자리 위에 앉아 음식을 나눠먹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편히 앉아 먹기는 처음이다. 날씨가 봄 날씨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외투를 벗고 퍼질러 앉아서 좋아하는 한과를 한입 베어 먹었습니다. 막걸리를 먹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만 참았습니다.


마치고 포항 바다가 훤이 보이는 카페, 멜로우선샤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간 근황을 물으며 2시간 넘게 수다 떨었습니다. 오후 6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카가 예비신랑을 데려왔습니다. 한우 안심 소고기 세트를 들고. 예비신랑은 훤칠한 키에 얼굴이 둥글고 피부가 뽀송했습니다. 고기 굽는 주위에 서성이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습니다.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술잔이 오고 갑니다. 가족 얼굴이 한우 색깔로 물었습니다. 누군가 말을 하면 까르르 웃는 조카딸이 귀여웠습니다. 예비 조카 신랑도 연신 웃으며 뛰어다닙니다.


"아, 배가 불러 죽겠다."

"나도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


가족사진첩 두 권을 꺼내 예비 조카사위에게 보여줍니다.


"아, 창피해! 이건 보지 마!"


조카딸은 어린 시절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가 봅니다.


모두가 새 가족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밤이 깊어가고, 정도 깊어갑니다.


"야, 너희들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쉬어라." 누군가 조카딸과 예비 신랑에게 말합니다. 예비 신랑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이 정도면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김애란 작가가 쓴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고등학생인 세 아이가 나온다. 채운, 지우, 소리.


채우 엄마는 교도소에 있다. 지우의 엄마는 실족사인지 자살인지 애매합니다. 소리 엄마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위 세명 모두 엄마가 곁에 없습니다.


세 명 중 두 명의 아들은 이 세 명 중 두 명의 아이들에겐 아빠도 없습니다.



채우는 아버지는 엄마에게 수시로 폭력을 일삼지요. 집에 들어가는 게 죽기 만큼 싫습니다.


그날 도 또 아버지 폭력이 시작된다. 채운이는 칼로 엄마를 위협하다 아버지를 말리다 아버지가 칼에 찔려 의식이 없이 병원에 입원하게됩니다.



엄마는 채운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수감됩니다. 입원했던 채운이 아버지가 죽게 됩니다.


상주가 된 채운이는 조문객의 위로에 괴로워합니다. 자수하려고 파출소 입구까지 갔다가 포기하고 교도소 엄마에게 가게됩니다.


경찰에 연행되어 가면서 귓속말로 채운이에게 속삭인


"너 여기서 한마디라도 하면 이번에는 엄마가 죽어"라는


말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할 것 같다며 허락을 맡으러.


소설 속 한 문장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되는 것."


누가 이런 아이들에게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교도소에서 엄마는 채운에게 편지를 씁니다.

"채운아, 어제 너는 여기 왔지. 지도에도 잘 안 뜨는 곳에, 기댈 만한 어른 하나 없이 너 혼자 왔지."


그리고 편지 끝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너의 삶을 살아."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버리고 네 삶을 살아가라는, 엄마의 처절한 거짓말인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프로보노》에는 선천성 하반신 장애를 가진 강훈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강훈이는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나를 장애로 태어나게 한 잘못을 배상하라고.


판사는 말합니다.

"생명보다 존귀한 권리는 없다."


헌법상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생명은 똑같이 존엄하다는 전제 아래,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불행하다"라는 판단은 불가능하다며 기각합니다.


나는 평소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하며 지인들에게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가족이 짐인 사람도 있고 축복인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 나 스스로가 축복이라는 생각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내 존재 자체가 축복이라면, 가족이라는 이름도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테니까요.


설날입니다. 떨어져 있던 친지와 가족이 함께 모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 아이들처럼 가족이 없는 이들도, 가족이 있어도 외로운 이들도 있습니다.


이번 설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72만 명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힘겹게 설날을 보내는 사람을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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